그림책으로 만나는 슬픈 역사
그림책으로 만나는 슬픈 역사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3.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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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3.1절 103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상하게도 올해는 기념식을 보며 마음이 울컥했다. 7개 국어로 낭독한 독립선언문과 첼로 연주가 나를 일제강점기로 데려갔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방영한 KBS의 `박필근 프로젝트'는 그동안 성폭력, 전쟁의 미해결된 문제로 인식되었던 위안부 이야기를 그간의 시각과는 다른 확장된 시각으로 그려냈다. 특히 민들레 씨앗으로 위안부를 은유화한 그림책 `월평리 민들레'는 관심이 갔다. 일본의 청년들에게 그림책을 낭독하고 춤과 음악으로 위안부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들이 아픔을 공감하고 눈물을 보이는 모습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역사의 진실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작은 손길들을 보며 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우리의 그림책 중에는 이미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가 2010년 출간되었다. `꽃할머니(권윤덕 글·그림, 사계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토대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다룬 특별한 그림책이다. 꽃할머니는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평화그림책이란 일본 그림책 작가들의 제안으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한·중·일 세 나라가 함께 기획하고 공동 출간을 전제로 시작된 시리즈다.

위안부 이야기는 가볍게 나누기에는 고통스러운 역사다. 아직도 나라 간에 대립하고 있는 주제라 불편하고 무겁다, 하지만 길가의 소녀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요시위가 무엇인지를 모르거나 왜곡하거나 잊는 일들이 많다. 적대적인 감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폭력에 대한 배상으로만 남아 먼 이야기가 되어간다. 미래로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고 세대를 뛰어넘어 나눌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꽃할머니는 의미가 있다. 마주하기에 불편한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모든 세대와 소통한다. 권윤덕작가는 인터뷰에서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하면서,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함께 희망을 찾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전했다.

활짝 웃거나 시무룩해지는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진 꽃할머니는 웃을 일이 없다하신다. 한 웅큼 따온 꽃으로 꽃누르미를 하신다. 언니와 나물을 캐러 갔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낸 세월은 할머니의 삶과 감정을 빼앗았다. 다시 돌아온 고향에는 부모님도 언니도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인생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다시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2010년 한국에서 출간된 꽃할머니가 일본에서는 2018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세 나라가 공동으로 기획했지만, 일본에서는 여러 이유로 반대에 부딪혀 출간이 어려웠다고 한다. 평화그림책을 발의했던 일본에서의 출간이 어려웠던 이유는 감추고 있는 진실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꿈꾸는 평화는 무엇일까. 진실을 회피하며 평화를 꿈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알리는 소식에 세계가 들썩거린다. 휴전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전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싸울 이유는 수만 가지이겠지만 꽃할머니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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