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모태가 된 한말의병
독립운동 모태가 된 한말의병
  • 이승훈 충북도청 학예연구사
  • 승인 2022.02.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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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이승훈 충북도청 학예연구사
이승훈 충북도청 학예연구사

 

의병은 국가가 외침으로 인해 위태로울 때 민중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웠던 군대 또는 그 병사를 말한다. 한국사에서 기록된 의병은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조선 말기 외세의 침범에 대항한 구한말 의병으로 대표된다. 국가에서는 매년 6월 1일을 의병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의병의 날로 지정 기념하고 있다.

현대사와 가장 가까운 구한말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의병항쟁을 기록한 영국의 종군기자 메켄지는 의병에 대해 “몸으로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라고 적었다. 이는 의병들 스스로 목숨을 바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국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의 중심에 충북의 의병들이 있었다. 구한말의 의병항쟁은 크게 을미·을사·정미 의병 3개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각 시기별로 충북의 의병들이 크게 활약하였다.

먼저 을미의병은 명성황후의 시해사건과 단발령으로 촉발되었으며, 유인석을 중심으로 한 제천의진이 활동하였다. 제천의진은 충주성을 점령한 뒤 충주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계속되는 의병활동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을사늑약 체결로 독립국으로서의 자주권을 상실하자 이를 회복하기 위해 을사의병이 봉기하였는데, 가장 먼저 봉기한 지역이 바로 충북이었다. 을미의병 때 유인석 부대의 중군장을 역임한 원용팔과 전군장으로 활약한 정운경이 각각 제천과 단양에서 봉기하였으나 제대로 활동을 전개하기 전에 발각되어 조직이 와해되었다. 그러나 소백산맥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청풍·단양·죽산·영춘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미의병은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일어난 구국항일무력전으로 충북에서는 을미의병 유인석 부대의 유격장인 이강년이 제천에서 의병을 봉기하였으며 청주에서는 한봉수, 보은 속리산에서는 노병대가 봉기하였다.

이에 일제는 야만적인 초토화작전을 전개하여 의병활동 지역의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대량 살육하면서 의병의 활동을 저지했다. 이후 의병은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옮겨가며 항전을 지속해 나갔으며, 이는 독립군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이처럼 충북의 선조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져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나 현재 대부분은 그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에서 그분들의 이름을 다시 찾을 수는 없으나 그들의 뜻은 다시 기려 민족정신의 회복을 통한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충청북도에서는 그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던 충북의 독립운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다시 한번 민족정신과 의지를 고취시키고자 한다. 올해는 의병활동에 대한 정리를 시작으로 연차별로 애국계몽운동, 3·1운동, 충북인의 국외지역 항일투쟁, 사회운동, 항일사적, 충북 독립운동가 열전 등을 정리할 계획이다.

오는 3·1운동 103주년을 맞이하여 자유와 독립, 정의와 평화 그리고 민족을 위해 싸우다 소리 없이 사라져간 선조들의 정신을 바탕으로 도민 통합을 통한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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