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
내리막길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02.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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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우수도 지났다. 힘을 잃은 눈발이 흩날린다. 봄눈이다.

요즈음은 누구를 만나는 일도 편치 않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하늘길이 있다 하여 길을 떠났다. 순창 용궐산으로 갔다.

잔도 길이 아름답다는 정보를 듣고 잔도라는 뜻을 찾아봤다. 다니기 어려운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을 매듯이 하여 만든 길이라고 한다.

용궐산은 높이 647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행은 수직으로 올라야 했다.

화강암 통 바위산이다. 정상을 향해 한 발 한발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찼다. 정상을 향한 마음만으로도 힘이 생겼다.

하늘길은 산허리에 선반을 달아놓은 듯 절벽에 길을 내놓았다. 아래로는 그림 같은 섬진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산과 강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멋진 하늘길을 거닐면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득했다. 절벽에 길을 내 운치를 더해준다.

힘들여 올라왔지만 정작 정상에서는 잠시 머물고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는 정상에 섰다는 그 쾌감을 만끽하고 나면 더 이상 흥미를 잃는다.

땀을 흘리면서 오르는 과정이 즐거운 것이다. 기쁨은 순간이다. 영원한 기쁨도 끝나지 않는 슬픔도 없다고 했던가.

산뿐만이 아니라 사람살이도 이와 같다. 요즈음 청년들은 취직하려고 적게는 몇 년, 아니면 더 긴 시간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면 쉽게 가지 않았다. 운동선수, 학자, 예술가, 재력가 등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의 성공담을 들어보면 상상도 못할 노력이 있었다. 먹는 것, 잠자는 것,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철저히 그 성공의 길을 위해 걸었다. 그때 누군가 손을 잡아 끌어주거나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뒷면을 보면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동력을 준 사람들이 있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빛나는 자리에 오른 사람도 영원히 머무르지 못한다. 내려와야 한다.

산은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내리막길에서 동행인이 발을 잘 못 디뎌 미끄러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작은 부상이 있었다.

내리막길은 제동력이 없으면 위험하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험난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내리막길이다.

제동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잘 내려가고 싶다.

오르는 이는 힘겨울 때마다 동력이 필요하듯 내리막길에서도 제동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제동력을 잃으면 순식간에 곤두박질 치며 무너진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이에게 동력과 제동력은 몸의 균형을 일정하게 지탱하는 원천이다.

나는 아직 허허벌판에 서 있는데 사위가 어두워진다. 욕심을 접을 시간이다.

뭔가 잘하기보다는 어눌하고 자신감은 바닥을 보이고 육신은 이미 쇠퇴의 길로 가고 있다. 세상의 잣대로 보는 성공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내리막길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내리막길이지만 이 길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천천히 내려가면서 올라갈 때 외면했던 노약자의 불편을 살피면서 손을 잡아 주는 여유를 보이는 것이 내려가는 사람, 내 몫이라는 것을 안다.

하늘길을 내려오면서 이 말이 생각난다.

“당신을 괴롭힌 가장 힘들었던 나날이 당신을 웃게 한 가장 아름다운 내일을 만든다”는 멋진 말이다.

용궐산 하늘길을 오르고 내려오는 내내 눈발이 흩날렸다. 힘을 잃은 눈발에서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아챘다. 내리막길에서 봄눈을 맞으며 나는 다시 봄의 새싹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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