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싸움에 관한 진실한 개똥철학
진정한 싸움에 관한 진실한 개똥철학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2.02.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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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어린 독자를 위해 그림책을 고를 때면 외면하고 싶은 단어들이 있다. 폭력성이 짙거나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주제를 품은 단어들이 제목에 들어 있으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이럴땐 세심하게 책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읽어주는 이가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짚어가며 먼저 읽어봐야 한다. 이 모든 주제들, 우리 삶에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기에 그림책 작가들은 은유법을 쓰거나, 에둘러 말하거나 그도 아니면 정공법으로든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애쓴다.

`싸움'을 중심에 놓고 정공법으로 다 드러낸 그림책이 있다.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다비드 칼리 글·세르주 블로크 그림/문학동네>이라는 그림책이다. 제목만 보면 어른들은 감추고 싶은 책일거다. 허나, `다비드 칼리'라는 작가 이름이 `어라! 한 번 볼까?'하며 시선을 잡는다. 역시, 위트와 허를 찌르는 통찰력으로 `싸움'을 마주하게 한다.

어른들은 늘 말한다. 싸움은 하면 안 되는 것이며 그 자리에서 억지로라도 화해를 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는 어떤가?

어른들의 소식지인 뉴스만 보더라도 가족 간의 싸움, 정치인들의 싸움, 국가 간의 싸움 등이 난무하지 않은가! 감출래야 감출수가 없는 일이다. 이는 `싸움은 인류와 동시에 탄생했다.'는 싸움의 시원에 관한 책의 내용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 책을 보며 `싸움'을 중심에 두고 탐구를 해 보자.

글과 그림에 해학이 있어 재밌다. `쉬는 시간에 벌어진 싸움판!'이지만 웃음이 그득한 그림 속 아이들 표정에 웃음 나고, `누가 시작했어?'라는 어른들의 답 없는 질문에 중구난방으로 향한 아이들의 검지손가락은 어른들을 뜨끔하게 하며 웃음 짓게 한다.

싸움에 대한 유형과 효능을 이야기하며 학구적 탐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큰 사람 대 작은 사람이 싸우면 정의롭지 못한 싸움이고, 3 대 1로 싸우면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싸움이란다. 그러면 진정한 싸움이란 `똑같은 키, 똑같은 몸무게, 똑같은 수'로 대적해야 한단다.

허를 찌르는 통찰이 있어 좋다. 놀이로서의 싸움은 `타임!'이라고 누군가 외치면 멈춰 줘야 하고, 해가 지면 끝나는 싸움이어야 하며, `내일 보자!'하며 항상 내일을 기약할 수 있어야 한단다.

선한 결말이 있어 안심이다. 싸움이 끝난 뒤 얻는 것은 거의 없다. 아니, 아무것도 얻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라며 되돌아보게 하는 짬을 줘 다행이고, 누가 뭐라든 `내가 이겼어! 챔피언은 나야, 나!'라며 패배감에 젖지 않고 증오심도 품지 않는 건강한 싸움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있어 다행이다.

인류는 계속 진화하지만 싸움은 여전히 사소한 일로 터질 것이고, 인간이 생존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힘의 균형이 어긋난 관계에서 그저 힘을 과시하기 위해, 공정한 규칙이 존중되지 않는 싸움이 허다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싸움에 관한 나름의 소신(?)을 책 속에서 건져 올려 어린 독자들이 정립하길 작가는 희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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