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관객이 되고 싶다
나도 관객이 되고 싶다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2.02.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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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나는 언젠가부터 소규모 연출가다. 미술인이기도 한 나는, 개인전을 위한 작품구상 단계부터 이미 연출이 시작된다.

특히 나처럼 입체(설치) 작업을 하는 미술가들은 공간의 구조에 따른 효과적인 작품설치가 전시회의 성패를 결정짓기도 해 공간 연출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개인전을 앞두고서는 사전 답사를 위해 여러 번 미리 전시장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작품설치의 방향성도 계속 수정된다. 벽면의 크기나 돌출 면에 따라 작품의 크기나 형태가 결정되기도 하고, 설치작업의 특성상 현장성이 강해, 사전 예측 상황과 크게 어긋나는 일도 많다.

더군다나 LED 조명을 작품과 함께 사용하는 나는, 전기배선을 연결할 수 있는 바닥이나 벽면 코드 연결구를 찾아내는 일도 중요하다.

이런 수고로움을 고민하며 벌써 11번의 개인전을 마쳤다.

어찌 보면 최근에 나는 작품 제작을 위한 수고 보다, 작품설치를 위한 연출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그만큼 내 작품전은 조명과 작품배치, 그리고 전시장의 조형성을 섬세하게 그려내야 한다.

그리고 관람객의 동선은 물론, 때에 따라 전시 효과를 위한 음악 설정과 오프닝 무대까지, 종합연출 개념을 갖춰나가야 한다.

개인 작품전에서 이런 모든 것들은 대개 고스란히 작가의 미션으로 주어진다. (공공 미술관 또는 규모를 갖춘 사립미술관에서 전문 학예사를 두고 운영하는 경우는 제외) 물론 지인들에게 부분적으로 전시 디스플레이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건 단순노동의 수고가 대부분이고 실제 전체 연출의 책임은 작가에게 지워진다.

그런데 근래,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생각의 방향을 조금 달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작품의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고 재밌는 전시 방향성을 찾고자, 내가 아닌 일반인에게 내 작품전 연출을 맡기려 생각하고 있다.

물론 연출가는 작가의 성향 및 작품의 본질을 분석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함은 기본이다.

운 좋게도 나는 그런 일반인을 찾은 것 같다. 미술인이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시각이 아니고, 일반인이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오롯이 내 작품을 맡기려 한다.

이분은 음악도 마니아적 기질을 갖추고 있다. 폭이 넓을 뿐만 아니라 취향에 따른 음악적 깊이가 크다. 아마도 내 작품의 분석을 통해 가장 필요한 음악도 건져 낼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내 작품전에 으레껏 등장시켰던 오프닝 행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직접 연출하도록 의뢰하고, 나는 죽어라 멋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데 온 힘을 바쳐볼 테다. 그리 생각하니 맘이 참 편하다.

미술가인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연출가를 통해 관객이 보고 싶은 시각으로 작품전을 통째로 편집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내 작품전을 그들과 같이 열어보는 거다. 그냥 무책임하게 한쪽으로 비켜서겠다는 게 아니다. 예술적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과 내 작품전을 좀 더 세분화해서 같이 공유하고 설계해보겠단 거다. 때론 티격태격 의견대립도 있을 테고, 못 해 먹겠다는 둥, 작가 혼자 하라는 둥 설왕설래도 있을 거다.

내 것이 아니고 우리 것으로, 그리고 내 작품이 전문 미술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도 될 수 있도록, 나는 이번 전시회 중앙에서 살며시 빠져나와 주인공이 아닌 관객이 되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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