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대접
손님대접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2.02.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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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사위의 생일이 가까워 왔다.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처음 맞는 생일인 만큼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닌 것 같기에 전화를 했다. 자동차로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인 것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였다. 딸애가 대뜸 하는 말, 생일 챙겨줄 거냐고 반문을 해온다. 머뭇거릴 틈도 없이 그러마고 답을 했다.

그날 이후로 작은 부담이 생겨났다. 흔히 하는 말, 백년손님이 온다는데 어찌 아무렇게나 대접을 하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음식 솜씨라고는 버젓이 드러낼 자신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그렇다. 우리 식구 끼리야 그동안 하던 대로 편하게 지내왔지만 막상 다른 식성을 가진 사위를 대하자니 조심스러워졌다.

사실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보고 들은 것도 부족했고 누구를 대접할 만큼 발휘할 기회도 가져보지 않았던 터라 나 편할 대로 살아왔다. 먼저 며느리를 보았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만큼은 염려를 갖지 않았었다. 어쩌랴, 장모 이름으로 사위의 생일을 한번은 챙겨야 하니 깜냥대로 준비에 들어갔다.

미역국은 기본이고 밑반찬이랑 고기와 생선을 정성껏 준비했다. 밥상을 마주하는 순간 동태를 살피고야 만다. 인사치레인지 몰라도 사위는 맛있다며 잘 먹고 있다. 장모 노릇의 관문을 하나 통과하면서 약간의 안심에 취해간다. 먹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하고 삶의 단면이 확장된 것 같아 내심 입 꼬리가 올라가는 순간이다.

곁에 있는 남편을 보다가 지난날이 떠오른다. 그 사람도 한때는 백년손님이지 않았던가. 가끔씩 친정에 갈 때면 엄마는 부엌에서 종종걸음을 치시고는 했다. 무언가 색다르게 대접하기 위해서 신경 쓰셨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왔던 세월이 가슴을 흔들어댄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있다. 새엄마였지만 백년손님을 맞아줄 분이 계셨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이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모든 것은 이렇게 희미해진 세월이 쌓이고 난 후에야 그리워하며 아쉬움에 젖어 드나 보다. 밥상을 앞에 두고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여야 했다.

백년손님을 지나 천년손님이란 호칭이 기억난다. 언젠가 나이 든 분이 하는 말씀인데 며느리는 천년손님이라나. 그 당시는 한참을 웃고 말았었다. 나 역시 며느리를 보기 전이었으니 알 턱이 없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 맞은 백년손님이야 조심해서 다루면 되지만 근처에 사는 천년손님은 백년손님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이 확실히 피부로 와 닿는다. 돌이켜보니 우리 내외가 뱉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저희들끼리 다툼이 일었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기 때문이다. 내 속이 좁은 탓인지는 몰라도 그날 이후로는 며느리를 대하기가 언제나 손님 같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삶의 공간은 희비가 뒤섞인 마당이다. 어쩌겠는가. 모두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며 수련에 드는 일이 필요한 것을 알아간다. 어른이 되었다 해도 어른 값을 치르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보이는 것까지 무수할 뿐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내 비록 작아질지언정 벗어나지 않는 범주 안에서 백년손님과 천년손님을 귀히 여기며 살아가려 한다. 내내 어려운 존재들이기에 대접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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