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보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나?
생쥐보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2.2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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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요즘 대선판을 보노라면 캐나다의 한 정치인이 연설에서 언급해 유명해진 `마우스랜드(Mouseland)'우화가 새삼 생각난다. 70여 년 전 캐나다 서스캐처원주 주지사 토미 더글러스가 전통 양당의 오랜 독주를 비판하며 곁들인 얘기다.

생쥐들이 사는 나라에서 4년마다 대통령을 뽑기로 했다. 생쥐들이 절대다수였지만 힘과 재력을 갖춘 소수 고양이들만 출마하게 됐다. 처음에 생쥐들은 언변과 풍채가 좋은 검은 고양이를 뽑았다. 그는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쥐구멍을 크게 확장하고 생쥐들의 안전을 위한다며 걸음의 속도를 제한했다. 덕분에 고양이들은 손쉽게 쥐를 잡아 배를 채울 수 있었지만 생쥐들에겐 일상이 고통이 됐다. 4년을 벼른 쥐들은 검은 고양이가 만든 쥐구멍을 없애겠다고 공약한 흰 고양이를 대통령에 선출했다.

새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다. 둥근 쥐구멍을 없애고 네모 꼴로 만들었다. 그런데 구멍의 크기가 이전 둥근 구멍의 두 배나 됐다. 고양이들은 두 손을 한꺼번에 구멍에 집어넣어 쥐를 사냥할 수 있게 됐다. 4년 후 선거에서 생쥐들은 다시 검은 고양이를 선택했지만 형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가 교대로 정권을 잡고 생쥐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마침내 각성한 생쥐가 한 마리 나타났다. 그는 “문제는 고양이의 색깔이 아니라 후보들이 모두 고양이라는 사실”이라며 생쥐를 대통령으로 뽑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생쥐들은 그를 기존 제도와 질서를 부정하는 빨갱이로 몰아 감옥으로 보냈다. 해서 마우스랜드에선 여전히 고양이가 색깔을 달리해 가며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다.

더글러스는 연설 말미에 “생쥐의 어리석음을 비웃기 전에 캐나다의 지난 90년을 돌아보라”고 말했다. 정치를 선점한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누리는 사이 일반 국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냉철하게 따진다면 우리가 생쥐보다 지혜롭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은 말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더글러스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을까? 거대 양당이 지난 수십 년간 청와대에서 바통을 주고받는 동안 서민들의 삶은 좋아졌을까? 무엇보다 꾸준히 확충돼온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이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게 한다. 빈부격차, 교육격차, 기회 격차의 확대는 이제 신분세습제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선거 때마다 철폐를 약속한 비정규직은 더 양산됐다. 현장 근로자들이 주검이 돼 퇴근하는 끔찍한 상황도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산가들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게 됐다. 코로나 위기에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생사를 넘나들고 있으나 대기업과 플랫폼기업은 역대 최고 실적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벌어지는 대선에서 양당은 어떠한 책임도 추궁받지 않는다.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의 70% 이상을 양당의 두 후보가 독점하고 있다. 선택을 보류한 답변자를 빼면 80% 이상이 두 정당 후보를 비슷한 비율로 지지하는 형국이다. 차고 넘치는 본인의 흠결로도 모자라 배우자와 가족의 문제까지 불거졌지만 지지율은 변동이 없다. 전략이라야 상대의 약점과 말꼬리를 파고들어 공격하는 네거티브 아니면 전국 230여 지자체를 모두 우량도시로 만들겠다는 공허한 포퓰리즘뿐이지만 이를 따지는 목소리는 별반 들리지 않는다.

양당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견고한 믿음은 1·2등에 견줘 모자랄 것 없는 제3, 제4, 제5의 후보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어차피 떨어질 후보라거나, 최악 후보의 당선을 막으려면 라이벌 후보를 뽑을 수밖에 없다는 등의 옹색한 논리를 동원하고는 고육책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마우스랜드'로 가는 경로가 아닌가 싶다. 더글러스는 “버튼 하나 누른다고 해서 다음날 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투표장에 나가 기표 한번 하고 나서 유권자 의무를 다했다고 자부하지 말라는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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