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장승
살아있는 장승
  •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 승인 2022.02.1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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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필자의 작업공간이 있는 이정골로 오다 보면 청주에서 만나는 조선시대의 석불인 순치명 석조여래입상을 만날 수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0호에 지정되어 있는 이 석불은 일반적인 석불과는 달리 네모난 모양에 거칠며 투박한 표정을 하고 있다.

섬세하게 조각된 석불의 모양이 아닌 굵고 투박하게 조각이 되어 있어서 사찰의 석불이라기보다 이정골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보인다. 그래서 순치명 석조여래입상은 석불에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의 기능과 형태를 접목한 조선시대 융복합 예술 작품이란 생각을 했다.

10여 년 전 필자는 이정골의 이 작품(?)을 보고부터 전국 방방곡곡 답사를 떠났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경주 다보탑과 석가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등을 스케치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가장 소박한 우리의 미적 감성이 투영된 장승과 정제되고 고도화된 기법으로 만들어진 불탑들을 보면서 필자는 동시대 기반기술을 품은 현대예술의 형태로 옮겨오고 싶었다.

일단 장승 이야기를 잠깐 해 보자면 장승은 마을이나 절의 입구 또는 길가에 사람의 머리 모양을 본떠 세운 기둥으로 마을 간의 경계나 이정표의 역할을 했다.

또한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보통 남장군과 여장군이 짝을 이뤄 세워졌다. 장승은 마을마다 서낭당이나 산신당 등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되었으며 마을에 액운이 들거나 질병이 전염되었을 때 장승 앞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러한 장승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위안을 받고 그것에 의지할 수 있었다.

자연신의 대상인 하늘과 땅 그리고 나무에 관한 상징물인 장승에 대한 기원과 소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민간 신앙이었다.

대부분의 장승은 나무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죽은 것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숭고한 예술 작품의 완성이라 생각된다. 이미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오랜 세월 동안 모진 비바람 속에 서서 액운과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때로는 개인의 소원을 비는 대상으로 우리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장승은 살아 숨 쉬는 예술 작품이다.

이보다 뛰어난 예술 작품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만약 외국인들이 필자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은 달항아리 같은 도자기가 아니라 장승이라 말하고 싶다.

소박한 우리 마을의 모습을 담은, 그래서 더욱 정이 가는 장승을 대하면 우리의 은근하면서도 끈질긴 민족성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전 세계에 K-컬쳐가 퍼져나가는 지금 장승을 오브제로 한`코리아 어벤져스' 연작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수호신 중에서 집과 건물을 수호하는 성주신, 집터를 지키는 터줏대감, 마을을 지키는 동신과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 마을의 산을 지키는 산신 등이 동시대 기술기반 예술을 활용한 실감콘텐츠 미디어아트로 재창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미디어 기술로 재탄생되는 전통 설화와 전통 한국형 신의 존재들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경험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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