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경
명절 풍경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2.02.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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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하루 확진자 1만 7천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번 명절에는 손주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우리 내외만 조용히 산소에 다녀오자는 내 제안을 남편이 수긍했다. 설 연휴가 시작된 늦은 밤 딸은 가족을 앞세우고 들이닥쳤다. 그동안 바이러스 공포로 꼼짝 않고 갇혀 지내든 아이들이 외가에 가자고 보채서 왔다고 했다. 절집 같던 집안이 갑자기 들썩이며 환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아파트에 사는 8살, 10살 된 남매는 아래층의 항의로 집안 전체에 두툼한 매트를 깔아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얼마 만에 만난 자유인가!? 제 마음대로 뛰고 구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안쓰러움과 웃음이 절로 났다.

명절 차례 상차림도 바뀌었다. 남편의 의견으로 성묘와 차례를 묘소에서 한 번에 모시기로 했기 때문이다. 추모 공원을 찾았다. 얼마 전에 이곳으로 모신 시부모님 묘소에 딸네 가족과 함께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꽃을 판매하는 곳이 있어 딸은 노란 튤립을 사서 안고 앞장섰다. 이십만평의 넓은 공원은 생과 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듯 숙연했다.

준비해 간 제물을 제단에 진설하고 있는데, 조율이시, 홍동백서 어동육서를 잘 맞춰서 놓거라. 하는 아버님의 음성이 등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 차례대로 잔을 올리고 손주들과 함께 성묘를 마쳤다. 우리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 보고 푸근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산을 내려왔다.

딸은 우리 내외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집에 먹을 것을 잔뜩 두고 웬 음식점이냐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을 주문했다. 점심을 먹고 나자 넓고 분위기 좋은 찻집으로 데려갔다. 찻잔을 마주 놓고 그간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순간 나는 이렇게 편히 명절을 보내도 되는 건가! 생각하고 있을 때, “앞으로는 이렇게 사세요.”라고 딸이 말한다.

내가 종가의 맏며느리가 된 지 45년째다. 시어머님이 계실 때 명절 준비는 한 달 전부터 한과와 약과 만들기로 시작했었다. 내가 곳간 열쇠를 물려받아 준비하던 명절은 간소했지만, 구색 맞춰 준비하는 과정도 며칠 걸렸다. 설날 아침이면 우리 집에서 시작한 차례는 작은댁을 거쳐 성묘를 다녀오면 몸은 녹초가 된다.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 맞으랴, 가족들 식사 준비하랴, 연휴가 지나면 명절 후유증으로 며칠 고생했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요즈음 신세대 주부들은 전통을 따르던 우리 세대와는 생각이 다르다. 화기애애한 명절을 위해 여성들만의 노고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명절에 여자만 손에 물마를 새 없이 상을 차려내야 하는 일은 사양하겠다는 분위기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이 아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바뀐 문화를 잘 받아들이면 모두 평화롭지 않을까.

우리도 올해 코로나 때문에 얼떨결에 추모공원에서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고 보니 느낌이 나쁘지 않다. 잘 가꾸어진 엄숙한 공원 풍경에 조상님들을 추모하는 마음이 집에서 지낼 때 못지않게 경건했다.

설날 아침, 함박눈이 수북이 쌓인 길을 달려 아들 내외가 손주를 앞세우고 집으로 왔다. 빙 둘러서서 세배를 마친 자식들과 마주 앉아 덕담을 건네며, 간소한 명절 상차림을 설명하자 며느리와 아들의 표정이 밝다. `그래, 너희가 좋다면 나도 좋단다.'조상님도 위에서 내려다보시며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실 것만 같다. 우리 집 명절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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