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
위대한 일상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2.02.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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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괜히 했다. 점수가 최하위다. 너무 솔직하게 문항을 풀었나 싶어 다시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자기개발서를 읽는다. 자신을 리셋하고 싶은 마음과 새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은 마음에서다. 『GRIT』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이란 부제가 함께 달린 책을 읽는 중이다. 「뉴욕 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등 전 세계 25개국 동시 출간, 아마존 2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였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릿(열정과 결합 된 끈기)'으로 인생역전과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줄거리다. 방대한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다채로운 사례를 읽는 것으로도 흥미로웠다. 책 1장에 자신의 `그릿'을 측정하는 문항이 있어 해보았다. 사실, 끈기나 투지와는 거리가 워낙 멀지만, 수치상 얼마나 끈기가 없는지 궁금했는데, 후회하고 있다.

기분이 별로다. 이럴 때 그림책 책꽂이를 찾는다. 위로받고, 나의 유약함에 대해 터놓고 말하고 싶었다. 18세기 알프스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가 없을 때 스위스의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가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산, 몽블랑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소쉬르 몽블랑에 오르다』를 꺼내 들었다. 그는 지질학자, 식물학자, 물리학자이자 알프스 탐험가였다. 그의 이력만 보아도 `그릿'이 상당히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등반 초반엔 몽블랑을 오르려 했지만 여러 번 실패한다. 그래서 맨 처음 몽블랑 정상에 오르는 사람에게 상금을 걸었다. 상금을 걸은 지 26년이 지나 수정채취업자와 의사가 몽블랑에 최초로 오른다. 그리고 이년 뒤, 소쉬르는 47세의 나이로 몽블랑에 오르기 위해 길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우리는 생의 변곡점에 관심이 많다. 계기나 동기가 성공한 자신을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작은 발견에서 `그릿'은 시작한다고 말한다. 발견은 관심과 열정, 끊임없는 훈련의 비장함으로 `그릿'은 완성된다. 워런 매켄지는 1만 개 이상의 작품을 만드는 도예가로 유명하다. 92세의 나이에도 도예 작업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처음 1만 개의 작품을 만들 때까지는 힘들었는데 그 뒤부터는 조금씩 수월해졌어요” 즉, 재능×노력=기술, 기술×노력=성취로 이어진다. 노력이란 말이 새삼스레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성장하는 과정보다 `완성된 탁월한 기량'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일상성보다 신비함을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기만하는 이유를 니체는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숭배를 조장한다'고 말한다. 선천적 재능을 신화화함으로써 우리 모두 경쟁에서 면제받는 것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다시 몽블랑을 오르는 소쉬르를 보자, 소쉬르 말고도 수많은 쉐르파가 동행한 등반은 빙산과 안개, 추위와 빙벽을 오른다. 똑같은 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닌, 각자 자신만의 길을 내며 오르고 있다. 넘어서지 않고는 다다를 수 없는 곳을 향해 매일 조금씩 될 때까지 탁월성을 추구한다. `그릿'은 나이 들수록 성장한다는 저자의 통계를 빌려 볼 때 소쉬르는 성숙한 `그릿'으로 몽블랑에 오를 자격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 좀 더 단단해지고 인내하는 물리적, 정서적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몽블랑 꼭대기에서 밤하늘의 별 밭을 보는 소쉬르. 더욱 끌리게 하는 마지막 문장.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재능을 편애하기보다 자신의 작고 새로운 발견으로 시작해 열정으로 이어가 보는 일상도 나쁘진 않겠다. `죽을 때까지 책을 읽고, 기력이 다할 때까지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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