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 될것 없는 방송토론 회피
득 될것 없는 방송토론 회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2.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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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1960년 9월 미국에서 대통령 후보 2명이 TV토론을 펼쳤다. 사상 첫 사례로 꼽힌다. 민주당의 케네디와 공화당의 닉슨이 맞대결을 벌였다. 부통령을 8년이나 지낸 닉슨이 노회한 화술과 폭넓은 식견으로 토론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결과는 달랐다. 정치 신인인 케네디는 이날 토론에서 역전의 발판을 구축했다. 그는 당당한 태도, 명료한 화법, 단호한 어투로 시종해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TV토론이 없었다면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들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날 토론을 라디오로만 들은 유권자들에게서는 닉슨이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라디오나 신문이 아니라 TV라는 매체에서만 가능한 시각적 승부에서 케네디는 승리한 것이다. 닉슨은 40대 열정과 패기를 앞세운 상대의 전략과 방송토론의 특성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조리있는 언변이었지만 말투는 어눌했고 태도는 방어적이었다. 정면의 카메라 대신 케네디를 바라보며 말을 함으로써 시청자들과 눈을 맞추는데도 실패했다.

국내서도 20대 대선 후보 4명의 첫 TV토론이 지난 3일 열렸다. 공중파 3사 합계 시청률이 39%에 달했다. 1997년 15대 대선 이후 최고 수준이다. 정당마다 자당 후보가 가장 뛰어났다는 아전인수식 논평을 내놨지만 토론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은 시청률에 호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토론에서 확실하게 승기를 잡겠다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평이로운 수준에 그쳤다. 논리는 나름 정연했지만 어조에서 특유의 활력이 떨어졌고 표정에선 피로감이 묻어났다. 최근 속출한 부인의 구설로 주눅이 든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토론에서 죽을 쓸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떨치기는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묻고 평범한 질문에 당당하게 오답을 말함으로써 다시한번 식견의 한계를 드러냈지만, 논점을 흐린 발언으로 예봉을 피해가고 상대의 공세에 주눅들지 않고 되받아치는 대목에서는 공부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의 예상밖 선전은 다른 후보들의 부진과 무관하지 않다. 공개토론에 사활을 걸어야 할 국민의힘 안철수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선 추격자의 절박한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거대 양당 후보들의 진흙탕 드잡이를 일갈할 호쾌한 한방을 기대했던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첫 토론은 후보들이 방송에 적응하고 상대 전략을 가늠한 탐색전이라 할 수있다. 공개토론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확인된만큼 남은 TV토론은 더 내실있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8일로 예정된 방송토론부터 무산될 공산이 높아졌다. 국민의힘이 토론을 주관할 기자협회와 중계방송사의 정치 성향을 거론하며 제동을 건 모양이다. 코로나로 후보들을 직접 마주할 기회를 얻지못하는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미국의 첫 대선 후보 TV토론은 판세를 뒤엎는 막강한 위력을 떨쳤지만 이후 사라졌다가 16년이 지나서야 부활했다. 번번이 집권당 후보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TV토론은 레이스에서 앞서가는 후보나 공격받을 빌미가 많은 여당 후보에겐 잘해야 본전이라는 얘기가 있다. 특히 현재의 유리한 판세를 유지해야 하는 후보로서는 한순간에 추락할 수도 있는 민감한 변수를 비껴가고 싶을 것이다.

만일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이런 속셈으로 토론을 피하기로 했다면 보통 오판이 아니다. 1차 토론에서 딴 점수를 지키고 싶을 터이고 거기서 드러난 약점을 파고들 3당 후보의 집중공세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 후보가 공개토론을 두려워하는 구차한 모습을 보여도 될 정도로 넉넉한 우세를 보이는 판세도 아니다. 앞서봐야 오차범위에 갇혀있는 수준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도·무당층의 과반이 TV토론을 지켜보고 지지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토론을 피해서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주관기관과 방송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권자들에게 맡기고 당당하게 링에 오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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