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하면 우리는 비색(翡色)청자와 구름, 학, 모란문 등의 무늬를 새기고 그 안에 검은 흙이나 붉은 흙을 채워 넣은 상감(象嵌)청자를 생각한다. 이러한 청자의 조형적 절정과 제작기술을 보여준 시기는 고려시대 중기인 12∼13세기다.
이 시기의 청자는 화려한 명성과는 다르게 옛 기록이나 편년자료가 부족해 연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도자기를 공부하는 연구자들도 우리나라에서 청자가 언제 제작되었는지에만 연구하는 바람에 고려시대 중기 청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이르러 고려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청자가마터가 발굴되고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터와 생산과정에서 폐기된 청자들이 보고되면서 청자의 생산 및 소비 양상을 다각도로 연구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려시대 중기 청자에 대한 연구의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는 청자가마터가 충북지역인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서 발굴조사되었다. 1999년 발굴조사된 생리 청자가마터는 논농사와 골프장을 임도를 가설하면서 가마와 퇴적층이 거의 파괴되어 가마로 보이는 회구부와 초벌편이 밀집 분포된 가마의 끝자락만이 남아 있었다. 청자 가마는 회구부와 초벌편이 확인되는 분포지역을 연결해 사라진 가마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청자가마는 정남북으로 축조되었으며, 가마의 길이는 회구부의 범위를 감안할 때 대략 20m 내외로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대전 구완동 청자가마의 길이와 유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청자 가마뿐만 아니라 청자를 만들기 위한 공간 작업장이 확인됐다.
작업장은 청자가마의 약 50m 정도 거리에서 위치하며 수비통을 중심으로 그릇을 제작하는 흙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기포를 없애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제토장과 그릇을 성형하는 제도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수비시설로부터 위쪽으로 15m 떨어져 있는 제도장에서는 커다란 항아리가 발견되어 그릇을 빚고 유약을 입혔던 작업공간으로 판단되었다. 수비통으로 불과 2∼3m 정도의 거리에 청자의 태토로 사용하였던 점토층이 퇴적되어 있어 작업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한 이상적인 가마터임을 알 수 있었다.
생리 청자가마터에서 수습된 유물은 가마 안이나 안정된 퇴적층에서 수습된 것이 아녀서 학술적인 내용은 약하다. 그러나 가마터에서 수습된 청자가 음성 생리지역에서 생산되었고 교란되지 않아 고려 중기 중부지역에서의 청자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수습된 청자는 발, 접시, 완, 잔, 병, 항아리, 주자, 뚜껑 등 일상의 생활 그릇이 대부분이다. 청자에 표현된 문양은 상감기법이 없는 반면 흙으로 만든 구운 틀을 활용하여 내면이나 외면 전체에 문양을 양각으로 하는 압출양각청자와 발이나 잔 외면에 음각으로 연판문을 새긴 청자가 제작되었다. 이 청자들은 강진에서 제작된 청자의 압출양각 문양과 유사하고 제작된 그릇의 종류도 같다.
음성 생리 청자가마터는 고급청자를 제작한 가마는 아니었지만, 고려시대 강진지역의 청자가마의 제품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중기 청자 제작에 새로운 면모가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시대의 수공업은 ‘所’라고 부르는 수공업품 제작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왕실이나 관급품을 조달하였고, 대표적인 청자 제작지로는 강진지역의 ‘大口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음성 생리 청자가마터에서 생산된 청자는 강진에서 생산된 청자 그릇의 종류와 문양까지 같게 제작하였으나 중앙정부에 공납을 위해 제작한 것이 아니라 음성 일대의 지방세력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음성 생리 청자가마터는 고려시대 중기에 강진과 동일한 그릇의 종류와 문양의 청자를 생산하여 지방세력에 공급한 것을 알려 주는 중요한 도자사적 자료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청자에 대한 지방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지방에서도 청자를 제작하여 공급하게 되면서 민간수공업 발전에 따른 도자산업 및 경제 변화를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