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무속
정치와 무속
  • 이형모 기자
  • 승인 2022.02.0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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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이형모 선임기자
이형모 선임기자

 

대선을 앞두고 난데없는 무속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천공 스승 멘토설을 제기하고 이재명 여당 대선 후보 캠프에서도 주술 관련 의혹에 대한 공세로 시끄러웠다.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무속 논란은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긴 데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지지자가 써 준 것이다, 손을 씻었지만 손가락 위주로 씻어서 안 지워졌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한 번의 TV토론회에서만 王자를 쓴 게 아니라 매번 토론회 때 손에 王자를 적은 게 포착되면서 전에 했던 해명이 다소 궁색해졌다. 게다가 윤 전 총장이 천공 스승이란 인물을 멘토로 뒀다는 얘기나 부인 김건희씨의 무속 의존 논란이 불거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상은 첨단 과학기술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지만, 유약한 인간의 본성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특히 대선과 총선 같은 정치의 계절이나 사회가 불안정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 초현실적인 주술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사실 무속이나 역술, 풍수지리 등이 정치인과 얽힌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조금씩은 이런 것들과 인연을 맺었다.

개신교 장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선을 눈앞에 둔 1991년 민자당은 서울 종로 관훈동에서 여의도로 당사를 옮긴 적이 있다. 그런데 한 무속인이 관훈동 당사가 닭벼슬 터라며 이곳을 떠나면 대선에 안 좋을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민자당은 여의도로 당사를 옮기면서도 관훈동 옛 당사를 그대로 두고 거기에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뒀다고 한다.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주영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부모님 묘소를 옮겼다. 원래 아버지의 묘소는 전남 신안에, 어머니 묘소는 경기도 포천에 있었는데 이를 경기도 용인 봉리산에 함께 이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던 이회창 후보는 그 뒤 3번이나 조상 묘를 옮겼다.

조상 묘를 이장해 화제가 된 정치인은 이 외에도 부지기수다. 대선주자뿐 아니라 지방선거와 총선을 막론하고 정치인들 적지 않은 수가 무속, 사주, 관상 등을 참고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선거 때만 되면 `내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를 궁금해하며 무속인이나 역술인들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그러고 보면 정치와 무속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인간은 미지에 대한 원초적 불안감을 가진다. 누군가에게 의지함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무속인들에게 대소사를 의논하는 것 또한 유사한 심리 기제라 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미래사를 무속인은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고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의 견해는 참고할 만하다. 45년 동안 전국 무속인 3000명을 인터뷰한 그는 “귀신은 없으며 귀신 체험은 심리적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점을 치는 것은 상대방에게 입력된 정보를 읽어내는 일종의 초능력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내가 아는 과거는 잘 맞히지만 나도 모르는 미래는 무속인들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속인 중 60%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지녔다고 그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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