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지승(大通智勝) 3
대통지승(大通智勝) 3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2.02.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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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上人(상인)의 맑고 깨끗한 성정은

만리에 뻗은 가을 강의 달과 같네.

楞伽經(능가경)을 읽다보면

밤늦도록 잔나비들은 책상 밑 밤을 훔치겠지.

반갑습니다. 무문관(無門關)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는 괴산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격외도리형 공안인 무문관 제9칙 대통지승(大通智勝) 3입니다.

법화경에 등장하는 대통지승지불은 가장 큰 깨달음에 도달한 부처님을 십겁이라는 무한히 긴 시간과 좌선도량이라는 공간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과 공간은 화엄경에서 종횡무진이라 하는 시공으로 언어나 알음알이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시공으로 좌선 도량에서 무한히 긴 시간을 수행해도 깨치지 못한다는 지독한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9칙 대통지승이라는 공안에서 흥양양 화상은 성불(成佛)이니 불성불(不成佛)이니 하는 이원론적(二元論的)인 관념에 깊숙이 빠져서 무한히 긴 시간과 좌선의 도량이라는 공간을 자신의 머리로 헤아려 묻고 있는 학인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통지승지불이 성불할 수도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이는 마치 지장보살이 이 세상에 성불하지 못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 성불할 때까지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노라고 발원한 대승적 서원과도 같은 맥락이지요.

대통지승지불이 부처인데도 부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산에 오를 때 정상에 오른 사람은 결코 정상에 다시 오르려 노력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통지승지불이 부처 가 될 수도 있으나 안 된 이유는 그가 이미 완벽한 부처이라는 것이지요. 대통지승불이 수행한 10겁의 참선은 이미 부처가 되려는 수행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10겁의 의미는 대승적 차원의 10바라밀의 보살행을 뜻하는 것이란 말이지요.

예를 들어 수행자가 치열한 수행을 통해 정진해 마치 높은 산을 등정해 가는 과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등산로의 초입에서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정상을 보고만 있는 사람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두 발로 혹은 온몸으로 정상에 올라봤던 사람은 분명히 다른 사람일 것이란 말입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정상에 결코 오르지 않는다”는 이 화두와 같은 말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란 말이지요.

다음 시간에는 격외도리형 공안인 무문관 제9칙 대통지승(大通智勝) 4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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