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세무민(惑世誣民)
혹세무민(惑世誣民)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2.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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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철학 선생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철학적 사색이나 종교적 성찰은 어설프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색이나 종교적 성찰은 사적인(private) 삶을 버림으로써 시작된다. 예수는 홀어머니와 사랑하는 연인을 뿌리치고 신의 일을 하기 위해 떠난다. 생계가 막연한 홀어머니와 자신을 연모하는 연인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길을 나선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건 부처도 마찬가지이다. 처자식을 버린다는 점에서 부처는 조금 더 극단적이다.

이렇게 해서 접어든 길에서는 정신적 방황이 기다리고 있다. 친숙한 모든 것이 멀어진다. 처, 자식, 부모, 친지, 친구가 낯설어지며 기댈만한 사람이 없고, 아무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에 철저한 외로움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은 이 씨름에서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되며 이를 이겨내려면 엄청난 정신력이 요구된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미치기 십상이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미치거나 죽는 것보다는 길을 떠나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훨씬 낫다. 적어도 큰 죄는 짓지 않는다.

예수는 광야에서 40일간 고행하면서 이 과정을 거친다. 이 길은 가면 갈수록 어려워진다. 내 안에 쌓인 낡은 습관과의 씨름, 자신과의 싸움을 거치다 보면 마지막에 가장 큰 위험이 닥친다. 가장 큰 적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예수는 광야에서의 고행 마지막에 사탄을 만난다. 사탄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적이다. 사탄은 사적인 영역에 매몰된 인간과는 상대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인간)의 한계와 씨름하는 자만 상대한다. 사탄은 이런 사람 앞에 나타나 가장 위험하면서도 달콤한 유혹을 해서 이제까지 수도자가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트린다. 사탄과 씨름하는 동안에는 신도 돌봐주지 않는다. 오롯이 혼자 이겨내야만 한다. 신은 사탄과의 싸움을 이겨낸 자는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야멸차게 내친다. 이 시험에서 신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天下爲公)

사탄은 세 가지 유혹을 한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고 하는 건 신을 이용해서 너의 생계에 걱정이 없게 하라는 주문이고, 성전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하는 건 신을 이용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해보라는 요구이며, 자신을 섬기라고 하는 건 신을 버리고 네가 세상의 주인이 되라는 요구이다. 모두 신을 자기의 개인적(世俗的) 목적을 위해 이용하라는 요구이다. 이에 대해 예수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유혹을 이겨낸다.

사탄의 요구는 모든 인간들이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세상의 모든 걸 다 주겠다는 유혹을 견딜 만한 사람이 있을까?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진정한 종교인은 100만 명 중의 하나 있을까 말까라고 한다. 사탄의 유혹이 그만큼 거역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유혹에 넘어간 인간들은 신을 등에 업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곧 이런 인간들은 사이비 교주가 되어 세상(世)을 혼란스럽게 하고(惑) 사람(民)들을 속이는(誣) 죄를 범한다. 천하에 사(私)가 없는(天下爲公) 신의 뜻을 사적(私的)인 목적으로 곡해하여 수십, 수백만 명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사탄을 만난 인간들은 그나마 큰 도둑놈들이다. 사탄의 유혹에도 들지 못하는 인간은 어떻게 될까? 이런 인간들은 지극히 사적(私的) 영역에 머물면서 사소한 인간의 이기심에 의존하여 자신의 배를 불린다. 좀도둑들이라고나 할까?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무속논란에 휩싸인 인간들이다. 잡신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 인간이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이들에게 의존하는 인간이나 다 마찬가지로 공(公)은 없고 사(私)만 있다. 이런 인간들에게 선공후사(先公後私), 멸사봉공(滅私奉公)은 남의 이야기이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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