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잘 쇠셨나요
설 잘 쇠셨나요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2.02.02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설과 추석은 국가가 3일 연휴로 경축하는 민족 최대명절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임인년 설은 그런 설다운 설이 아니었습니다.

시공을 가리지 않고 잠입하는 코로나(COVID19) 때문에 살얼음 위를 걷듯 설설 긴 설이었으니까요.

저승사자 같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의 신체만 공격하는 줄 알았는데 알게 모르게 인간의 마음과 미풍양속에까지 파고들어 세상인심을 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여 노파심에서 설 잘 쇠셨냐고, 과세(過歲) 안녕하시냐고 안부인사 올립니다.

몸에 이상은 없으신지, 보고 싶은 사람 못 봐서 울적하셨는지, 대선후보 지지를 놓고 가족 간에 언성을 높이지 않으셨는지, 재산과 부모부양 문제 등으로 언짢은 일은 없으셨는지를.

그랬다면 동심으로 돌아가 윤극영 선생님이 1924년에 발표한 `설날'이라는 동요를 큰소리로 불러보세요. 기분이 풀릴 겁니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세요'

그래요. 설날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설빔과 세뱃돈을 받아서 좋고, 어른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 보는 재미와 절 받는 보람이 쏠쏠하지요.

그게 바로 설의 극치입니다.

차례를 지내며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세배를 하며 가족 친지들과 축복을 나누고, 떡국을 먹으며 나이 한 살 더하는 의미를 새기고, 복조리 걸고 윷놀이하면서 우의를 다졌던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곱씹어 봅니다.

필자는 5남2녀의 장남입니다.

저와 결혼해 졸지에 맏며느리가 된 제 아내는 명절차례와 제사 수발을 숙명처럼 감내합니다. 그런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늘 빚진 마음으로 삽니다.

다행히도 두 아들이 착한 규수를 만나 결혼을 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과 아들을 두었기에 남부러울 게 없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번 차례도 아내와 조촐하게 지내기로 마음먹고 형제들과 아들 며느리에게 오지 말고 각자 거처에서 즐겁게 설을 쇠라고 했지요.

그런데 인천에 사는 큰아들 내외가 온다는 말도 없이 아들딸을 데리고 불쑥 나타나 축복처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세배도 받으며 즐겁게 설을 쇠었습니다.

손자와 증손주의 절을 받는 영정 속 부모님도 흐뭇해하신 것 같아 위안이 되었고요.

아무튼 먼 길 마다않고 고향 가서 차례 지내고, 부모님께 세배 올리고, 친구들 만나 회포 풀고 온 이는 복을 지었음입니다.

그들에게 코로나가 얼씬거리지 않기를, 복 지으며 즐겁게 살기를 희원합니다.

모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 마을 아이들에게 게임을 시켰지요.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매달아 놓고 먼저 도착한 아이가 그것을 먹는 게임이었어요.

`시작'을 외쳤는데도 아이들이 뛰지 않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함께 손을 잡고 가서 매달린 과자를 따서 나누어 먹는 겁니다. 놀란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구든 먼저 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 함께 손잡고 갔냐고. 그러자 아이들이 `우분트(UBUNTU)'라고 외치며 이렇게 답합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째서 한 명만 행복해 질 수 있나요`라고.

반투족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우분트를 설 연휴를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금과옥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있음이 다 당신 덕분이라고, 정말 감사하다고, 진정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 어언 3년인데 인류가 아직도 제압하지 못하고 있어 참담합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만물의 영장이기에 담대하게 물리치고 의연하게 일상의 자유를 회복할 거라는 걸.

울화통이 터지는 요지경 속 대선 판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노래합니다.

깨어 있는 국민들이 현명하게 선택하고 심판할 것이라는 걸 믿기에.

/시인·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