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꽃이 되기까지
눈물이 꽃이 되기까지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1.2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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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그녀에게는 행운이었다. 굴을 삶아 먹다 커다란 진주를 발견하였으니 말이다. 경남지역에 거주하는 부부는 어느 날 마산의 어시장에서 석화를 사서 굴찜을 해먹다 굴속의 커다란 진주를 발견했다. 자연 상태에서 진주가 발견되기란 아주 희박한 일이라고 한다. 1만개의 조개에서 1개의 자연산 조개가 나오는 확률이라고 하니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는 진주는 대개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개 속에 이물질을 넣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진주란 조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사투의 결과다. 또한 아픔의 승화다. 조개의 눈물이 보석이 되듯 아름다움은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매서운 칼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봄이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나무들과 땅속의 여린 생명들을 보아도 그렇다. 하물며 우리 사람은 어떠할까.

요즘 들어 감동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음성군 평생 학습관 프로그램 중 성인 검정고시 중졸과 고졸 강의를 하고 있다. 대부분 연령층이 60대에서 80대 어르신들이다. 그분들의 어린 시절,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에 급급해 부모들에게 자식들의 학업은 사치였을 테다. 그렇게 어른이 된 지금 그분들에게 공부란 삶을 이끄는 힘의 원동력이리라.

세 시간을 넘게 앉아 있으면서도 눈빛이 흐려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눈빛이 얼마나 또랑또랑한지 내가 미안할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 더 알려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를 해 간다. 연세가 있으니 기억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분들을 위해 나는 중간 중간 공부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드린다. 그분들에게는 주입식보다는 연상 기억법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분들에게 공부가 쉬울 리가 없다. 나는 매 시간마다 `집에서는 공부하지 마세요.'라고 말을 한다. 내가 보기에는 수업시간에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분명 집에서도 얼마나 공부에 대해 애를 태우실지 가늠이 된다. 언젠가 어떤 어르신이 집에서 공부하다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부도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공부가 너무 어렵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대부분 매 학기 수업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보면 합격하신다. 그때마다 나는 정말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을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합격을 하신 것이다. 합격을 했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주시는 분들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진주, 이런 게 진주가 아닐까. 아들 며느리가 사주었다며 메고 오신 가방을 열어 보이시던 행복한 어깨, 수업 첫날 며느리가 해 주었다는 감사함의 메시지가 동봉된 떡을 돌리시던 두 손, 오늘은 수업 끝나고 근처 분식집에 가기로 했다며 맑게 들뜬 목소리, 수업 시간만 생각하면 잠도 설칠 만큼 기다려진다며 수줍어하시는 양볼, 그 모든 순간 어르신들의 모습들이 내게는 진주로 보인다.

지난한 세월 얼마나 그립게 열망한 시간이었을까. 현대시 시간에 내가 교과서에 나온 시를 낭송하니 감격에 겨워 이런 시를 알게 되고 듣게 되니 신세계에 온 듯 행복하다는 어르신의 고백에 가슴이 먹먹했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조개는 상태나 환경에 따라 진주의 색이 달라진다.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이다. 한 분 한 분 모두가 각기 다른 진주의 빛이다. 그분들의 세월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분들의 아픔이 이제는 아름다운 꽃이 되고 진주가 되어 공부로 승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니 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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