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눈물을 훔치다
차가운 눈물을 훔치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1.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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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고을마다 선거 바람이 술렁이고, 산책길에는 노인들의 발길이 더디다. 과학기술과 자본의 쓰나미가 몰고 온 인구 계층의 불균형은 아기 울음 대신 고양이 울음이 동네마다 분분하다. 어느 것 하나 탓할 수 없는 시대, 장수가 존경의 대상만이 아닌 사회에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 낀 세대 아니 연결 세대들의 고민이 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성세대들은 현실을 고려할 때 노년의 삶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중년이 되고 보니 노부모 걱정이 화두에 오른다. 부모님을 잃은 친구들은 돌아가신 다음 후회하지 말고 무조건 잘하라고 한다. 시대가 변해 어르신들도 예전과 달리 자식들과 같이 사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물에 콩 나듯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이웃 사람의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속사정은 다 알지 못하지만 요즘 보기 드문 효자 효부임은 틀림없다. 표현하지 못하는 속앓이는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에서 읽을 수 있다. 어르신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시어머니는 치매로 시설에 계셔 그저 애처롭고 가까이에 사는 친정어머니를 보며 인생을 읽는다.

노인정에서 10원짜리 화투 치다가 말다툼한 이후로는 노인정에 가지 않는다. 당시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는 엄마에게 한 달에 한 번 깜짝 여행을 시켜준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노후가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만들어낸 아이디어다.

엄마와 친한 분들 네명씩 조를 짜서 본인들이 먹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을 메모해 두었다가 가까운 곳에 다녀온다. 식사와 커피 등 기껏해야 하루 20~30만원이면 충분하다. 가끔 간단한 선물도 손에 들려 보낸다. 이 여행을 시작한 다음부터 우리 엄마는 그 동네에서 짱이 된 것 같다.

내게도 농사지은 참기름이니 상추니, 고춧가루 같은 것을 보내온다. 요즘은 5~6명이 함께 산책하며 이웃끼리 돌아가며 음식을 만들어 드신다고 한다. 주위 분들은 본인이 선택되어 함께 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딸 언제 오느냐고 자주 묻는단다.

몸이 불편하고 혼자 생활하시는 분들은 어디를 가고 싶어도 쉽지 않다. 무릎과 허리 수술을 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어떤 분은 넘어져 허리를 다쳐 몇 달째 누워계신 분도 있다. 신기한 것은 집에서는 아프다고 끙끙거리신 분도 밖에 나가면 뒤뚱거리면서도 잘 따라다니신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쥐코마을에 갔다. 다들 대청호를 바라보며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다른 것은 잘 몰라도 이 일만큼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엄마의 안색도 걸음걸이도 안 좋아 보였다. 나는 힘없이 처져 있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힘없이 다니면 여기 두고 갈 거야” 하니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 괜찮아, 우리 딸 최고” 하며 엄지 척을 하신다. 집에 온 후 엄마는 “나, 사실은 아침 일찍 병원에 가 독감주사 맞고 와서 힘이 없어서 그래” 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돌아오는 내내 차가운 눈물을 훔쳤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삶의 방식이 훨씬 근본적이고 진지해진다고 했던가!

자연의 섭리를 져버릴 수는 없다. 삶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달라고 간청한 사람이 있었을까? 노년은 고통을 겪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다고 한다.

태어나면 누구나 겪어야 할 노년의 삶, 지금 기성세대가 노인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 또한 부모세대와 같이 고독 속에서 쓸쓸히 사라질 것이다. 머지않아 나도 엄마처럼 힘도 없고, 말도 어눌하고, 움직임도 둔해질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 바람으로 술렁이는 대한민국. 과학기술과 자본이 만들어낸 사회 현상에 우리는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일시적으로 선거 바람만 일으킬 게 아니라 노년의 쉼터 하나 만들어주는 골목 바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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