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조연이다
나는 오늘도 조연이다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01.2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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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손녀는 요즘 역할 놀이에 푹 빠졌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는 저녁이면 우리 집으로 와 두세 시간씩 놀다가 간다. 이즈음엔 소꿉놀이는 시들해진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역할놀이가 더 재미있는지 어린이집 놀이, 공주놀이, 결혼식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이는 언제나 주인공이다. 반면, 할미는 공주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을 맡으면 된다.

아이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역할을 할 때면, 초대받지 못한 요정이 되었다가 공주를 구하는 왕자로 일인이역을 해야 한다. 아이가 백설 공주가 되면 자연스레 마녀왕비 역할이 주어진다. 그때그때 역할에 맞는 연기를 한다.

때로는 몇 권의 동화책 내용이 믹스되어 헛갈리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느새 연기도 일취월장 하고 호흡도 척척 맞는 것 같다. 날마다 하는 놀이이니 대사를 뻔히 알고 있지만 아이는 매번 대사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일러준다. 우리의 놀이에선 아이가 감독이자 주인공인 셈이다.

어린이집 놀이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저는 선생님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아이들 역할을 맡긴다.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놀고 있는지 훤히 보일 만큼 재연을 한다. 아마도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 때는 집에서 엄마, 아빠와 있었던 일들을 역할놀이로 할 터이다. 부모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 좋은 모습을, 사이가 좋지 않으면 또한 그 모습을 보고들은 대로 놀이로 재현을 할 터이다.

날마다 수없이 놀이를 해도 싫증 내지 않는다. 친구들과 놀 때는 주인공역할을 하고 싶어도 맘껏 못하였으리라. 아이도 그런 규칙 정도는 알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는 주인공만 해도 허용이 된다는 것을 꿰고 있다. 네 살 아이에게는 주인공이 가장 빛나 보일게 분명하다. 사실 어른들도 주인공에게 시선을 먼저주고 큰 비중을 두지 않던가. 주인공 이외에 조연이나 엑스트라에 대해 눈여겨 보아주는 일이 흔치 않다.

지나온 삶에 나는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유년시절은 어디서나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 맞을게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발전하여 조연쯤은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조연이 싫지 않다.

지금도 이런저런 모임에서 임원을 맡는 일은 극히 드물다.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맡아야 하는 일이면 모를까 되도록 뒤로 한 발짝 물러나 협조를 잘하는 편이다.

세상이라는 큰 무대에는 다양한 역할이 필요하다.

주인공도 있어야 되지만 조연도 필요하고 그 외에 잠깐 스쳐가는 그런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던가. 조연의 역할이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작품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던가.

무대에서는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삶의 길에서는 어느 누구도 대신 맡아 줄 수 없는 주인공 역할을 잘 해나가면 된다. 손녀는 내가 조연 역할을 잘 하는 적임자임을 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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