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루
황학루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1.2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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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예로부터 학(鶴)은 십장생의 하나로 사람들이 영험하게 여긴 대상 중 하나였다. 순백의 빛깔과 고고한 자태는 그 자체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여기에 장수의 이미지까지 얹어지니, 오래 살기를 갈망하는 사람들로서는 경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학이기에 전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데, 당(唐)의 시인 최호(崔顥)가 남긴 시에 나오는 황학(黃鶴)이 바로 그것이다.



황학루(黃鶴樓)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여기에는 덩그러니 황학루만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황학은 한 번 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만 천 년 동안 유유히 떠도네
晴川歷歷漢陽樹(청천력력한양수) 맑은 냇물 저쪽엔 한양의 나무들이 역력하고
春草萋萋鸚鵡洲(춘초처처앵무주) 봄풀은 앵무주에 무성히 자라 있네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날은 저문 데 가야 할 고향은 어디던가?
烟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안개 낀 강 물결은 시름에 잠기게 하네

황학루는 중국 무창(武昌)의 황학산에 있는 유서 깊은 누대이다. 이곳은 역대로 시인 묵객들이 꼭 가봐야 하는 저명한 장소였다. 거기서 내다보이는 장강의 풍광이 빼어나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누대에 얽힌 전설의 메시지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시인도 황학루라는 누대의 이름에 끌려 아마도 마음을 먹고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누대에 오른 시인은 맨 먼저 그곳에 전해지는 전설을 떠올렸다.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인간세계에 잠시 머물던 신선이 황학을 불러 그것을 타고 신선세계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시인이 가 보니 그곳에는 신선도 없고 황학도 없고, 황학루라는 누대만 남아 있다. 시인의 가눌 수 없는 허전함이 공(空)이라는 시어에 축약되어 있다.

황학과 백운은 절묘한 색의 대비를 이루기도 하지만 사라짐과 남아 있음의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전설을 음미한 시인은 눈앞에 펼쳐진 풍광으로 시선을 옮긴다. 비가 오다 막 개인 날인지라, 강 건너 나무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인다. 또한 강 가운데 섬에 돋아난 봄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모습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라기보다는 봄의 생명을 느끼게 해 주는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다.

새봄의 생동감은 시인으로 하여금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곧 향수로 이어진다. 전설에서 허무를 맛보고, 풍광에서 생동감을 만끽하고, 이어서 향수와 외로움을 느끼는 시의 구성이 탁월하다.

무병장수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십장생 중 하나인 학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 학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 영생불사의 신선 세계로 가는 상상은 잠시나마라도 인간을 즐겁게 할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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