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이지스함'
대장동 `이지스함'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1.2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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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대장동 스캔들의 주역 김만배는 스스로를 `이지스함'이라고 칭했다. 이지스(aegis)는 미국 해군이 개발한 통합 전투 시스템이다. 첨단 무기와 장비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일사불란하게 전투를 수행하도록 한 자동화 체계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중의 신 제우스의 방패인 `아이기스'에서 유래했다.

김씨는 자신을 어떤 외부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막강한 방패의 소유자로 자신한 듯 하다.

얼마전 한국일보가 입수해 공개한 김씨 등 대장동 관계자들의 대화 녹취록에서는 이 방패의 실체가 대충 드러난다. 그동안 소위 `50억원 클럽' 멤버들로 거명됐던 인물들이 석연찮은 정황과 함께 재등장 했다.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박영수 전 특별검사, 곽상도 전 국회의원, 김수남 전 검찰총장, 권순일 전 대법관,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다. 홍씨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은 검찰과 법원 고위직 출신이다. 법 집행기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있는 전관들이 대거 포진된 방패가 김만배에게 왜 필요했을까?

녹취록에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밤마다 공무원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데”. 밤마다 누군가를 만나 미끼를 물리고자 했던 그에겐 애시당초 합법적으로 사업을 할 의도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릇된 탐욕에 법조 엘리트들까지 매수돼 양심을 저버렸다는 강한 의혹을 받는 게 대장동 게이트의 이면이다.

녹취록에는 전언의 형식이지만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할거냐'고 수차 채촉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결국 그 아들은 퇴직금조로 50억원을 받아냈다. 이들 부자가 김만배에게 당당하게 대가를 요구했다면 그에 합당한 모종의 역할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화천대유가 대장동 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된 직후 박영수 전 특검 명의로 5억원이 투자된 사실도 드러났다. 김만배 등이 50억원 전달 방식을 놓고 고민하는 대목에서 박 전 특검의 딸도 등장한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이미 이 녹취록을 확보했다고 한다. 50억 클럽과 무관하다는 당사자들의 주장을 뒤집을 정황들이 숱하게 드러났지만 반년이 돼가도록 수사는 제자리 걸음이다. 김수남 전 총장과 최재경 전 민정수석은 아예 조사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수사가 진척됐던 곽 전 의원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검찰은 제식구 감싸기 의혹에 무능 딱지까지 달았다. 경찰이 수사해온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에겐 구속영장이 발부돼 낯이 뜨겁게 됐다

수사가 답보하는 동안 2명의 주요 관련 인물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장동 사업을 추진하던 당시 성남시 정책실장을 맡아 실무를 주도했던 정진상 민주당 선거대책위 비서실 부실장을 검찰이 아직도 부르지 못하는 사정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이러니 특검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치우침 없이 계속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재차 호언했으나 식구들 앞에만 가면 순식간에 녹이 슬어버리는 칼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상한 것은 검찰의 온갖 과오와 허물을 들춰내며 해체를 줄기차게 외쳐온 여권에서 부진한 대장동 수사를 비판하는 소리는 별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보단체들까지도 촉구하는 특검을 결사 반대함으로써 오히려 검찰에 기대는 모양새다. 우리 해군은 첨단 무기와 전투 시스템을 갖춘 이지스 구축함 3척을 보유하고 있다. 2007년 `세종대왕함', 2010년 `율곡 이이함', 2011년 `서애 류성룡함'을 진수했다. 이지스함에 이름을 내준 세종대왕, 이이, 류성룡이 부패한 권력자들과 작당한 모리배가 이지스함을 자처하는 발언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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