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고 늙어간다는 것
나이 들고 늙어간다는 것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01.2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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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며 또 한 살을 먹게 됐다면서 친구 靑波가 좋은 말이라고 보내온 글이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茶山 정약용이 노년유정(老年有情)에 관해 마음으로 쓴 글 `心書'이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 없으니 그댄 자신을 꽃으로 보시게.

△털려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니, 누군가의 눈에 들긴 힘들어도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이다.

△귀가 얇은 자는 그 입도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도 바위처럼 무겁네. 사려 깊은 그대여! 남의 말을 할 땐, 자신의 말처럼 조심하여 해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너그러움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은 정은 사람을 감동케 하나니, 마음이 아름다운 그대여! 그대의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지리라.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뜻이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리라.

△머리가 하얘지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이고,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정신이 돌아버릴 테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리라.

그렇다. 나이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독일의 빌헬름 슈미트는 사람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만 있어도 평정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실제로 존재하지만 허위라 불리는 것들을 부정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나이 듦의 진리 중 하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런 나이 듦의 과정이 덧없음과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나이 듦이 허무하고 덧없긴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이로 인해 불쾌한 일이 일어난다.

영원한 청춘은 왜 안 된다는 말인가? 모두들 영원한 청춘을 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인생이 어떤 인생이겠는가? 나이 듦에 맞서 싸우느라 모든 힘을 낭비하는 대신 주름살에 새겨진 삶을 자신 있게 마주하고 싶다 하였다.

우리 손녀 손자는 각각 6살 4살이다. 나이 드는 일은 삶이 시작된 순간부터 계속해서 일어난다. 때로는 거의 알아차릴 새도 없이, 때로는 갑자기 들이닥쳐 그에 맞춰 대응할 겨를도 없이 밀어닥치듯 나이 들어 간다. 모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이미 나이를 먹는다. 뱃속 손자는 4살이 되었고 엊그제 3살이던 손녀가 6살이 되었다. 참으로 눈 깜빡할 사이가 아니던가.

아이들은 곧 학교에 갈 것이고 배움을 거쳐 사춘기를 지나 젊은 성인이 되며 점점 나이를 들어가게 된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동안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는 들어간다. 내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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