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놀이
화투 놀이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1.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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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너나 내나 남는 것이 시간뿐인걸,

교직에 있다가 정년 퇴임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지내?”,

“나야, 뭐 대상동 아줌마들하고 화투나 친다고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어제도 대상동에 가서 놀다 왔지.”

“그러잖아도 네 말 듣고 나도 화투 좀 쳐 볼까 하고 책을 봤지 뭐야!”

“저런, 10살짜리 우리 손자도 화투짝은 맞춘다, 얘, 두어 번 옆에서 하는 것만 봐도 다 아는 걸 책씩이나 보고 공부한다는 말, 머리털 나고 처음 들었다 얘.”

“그래, 공부하니 알 것 같디?”

“알아야 할 것, 외어 둘 것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사람의 몸에 피가 중요하듯 피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 말도 있던데?”

“피가 피 같은 존재라는 거지?”

나는 허리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공부밖에 모르던 친구,

깐깐한 선생님으로 정년퇴임 하더니 아직도 융통성은 제로인 꼰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뭐든 했다 하면 누구보다 잘 해내려는 마음이 병이 된 것일까?

화투놀이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직업이 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70이 가까워지도록 화투를 해보지 않았다는 거짓말 같은 그녀에게 나의 대상동 화투방 얘기는 이브의 유혹 버금가는 말이 된 모양이다.

그녀가 화투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로 인해 책을 펴고 연구하듯 공부를 했다니 기가 탁 막힌다.

“야, 당장 내려와라.

나하고 마주 앉아 1시간만 치면 대강은 알 수 있는데 박사티 내려고 화투마저 책으로 섭렵한다니? 이 꼰대야,

나보다 공부도 잘해, 머리도 좋아, 내가 친구에게 가르쳐줄 것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임은 생각지도 못했다. 흥얼흥얼거리며 날아갈 듯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도 대상동으로 향한다.

박 여사네 집에 모이는 세 사람에 내가 합해지면 고스톱의 정족수는 채워지는 것이고. 이곳만의 루울은 점, 백 원, 열심히 치다 보면 잃을 수도 딸 수도 있지만, 판이 끝나면 자기 출자금만 찾아서 일어나면 된다.

돈을 따서 수입을 잡지 않는 것을 보고, 뭐 김빠진 맥주처럼 재미없는 그런 짓 뭐하러 하느냐 하겠지만, 딸 때의 짜릿함과 잃었을 때의 아쉬움이 없어 밍밍할 것 같아도 시간 보내기에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놀이로서 이만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와, 첫뻑! 오백원씩 내 놔!

앗싸 똥 쌍피 !

아이고, 피박 썼네,

군것질거리와 차를 곁에 두고 둘러앉아 농지거리 섞어 주거니 받거니 힘껏 화투짝 내리치는 운동은 우리 제일의 놀이이며 운동이기도 하다.

옛날 아주 까마득한 어린 시절, 감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사금파리를 주워다 그릇을 만들고 풀잎과 꽃을 따다 상을 차리던 소꿉놀이가 떠오른다. 그 어설픈 놀이가 뭐 그리 즐거웠던지,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던가.

호호 하하 깔깔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머리 하얀 여인들의 고스톱은 딱 어린 시절 소꿉장난과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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