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머니에 그 아들 안중근 의사 母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안중근 의사 母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
  •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 승인 2022.01.1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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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이글은 안중근 의사가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뤼순 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 안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보낸 편지이다. 조 여사는 1910년 2월14일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라'고 당부하고 있다. (최근에 필자는 이 편지글을 서각해 학교에 게시했다)

이 편지를 받은 안중근 의사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답신의 유서를 보낸다.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인사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하옵기를 천만번 바라올 뿐입니다…위아래 여러분께 문안도 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꼭 주교님을 전심으로 신앙하시어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옵겠다고 전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은 정근과 공근(안의사 아우들)에게 들어주시옵고 배려를 거두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시옵소서. 아들 도마(안중근 의사 천주교 세례명) 올림'

두 편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최근 국가의 지도자라는 분들의 잘못된 자식 사랑(?)이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과 비교된다. 나라와 민족이 위기의 순간에도 희망의 불꽃은 이렇게 꺼지지 않고 불타고 있었다. 역사를 보면 훌륭한 인물 뒤에는 누군가의 격려와 위로, 용기를 주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더 그렇다.

안중근 의사의 삶의 이면에는 아들만큼이나 용감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있었다. 안중근이란 인물을 만든 것은 그 어머니의 `모성리더십'이었다.

조 마리아 여사는 국채보상운동 때 자신의 패물을 선뜻 내놓아 대한매일신보 1907년 5월29일자 의연자 명단에 올랐으며, 안 의사가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을 결심했을 때 조 여사는 “최후까지 남자스럽게 싸우라”고 격려했다. 2년 뒤 안 의사가 이토 통감을 사살하고 수감됐을 때는 안 의사 동생들을 보내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노니…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라”고 전했다.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된 뒤 편지와 함께 명주 수의를 보냈고, 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그 수의를 입은 채 당당하게 사형을 집행 당했다.

자식의 죽음 앞에 의연하게 수의를 지어주면서 편지를 쓰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기 자식이 잘 먹고 잘살기만을 바라는 현대의 부모들에게 조 마리아 여사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듯하다. 무조건적인 자식사랑이 자식도 죽이고, 나라도 민족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 땅의 모든 아들 딸들이 공부해 남 주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면 이 편지는 큰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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