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 그리고 나
죽음과 삶 그리고 나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2.01.13 2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드륵 드르륵'들려오는 소리와 동시에 몸이 먼저 반응하여 믹서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이미 늦은 반응이었다. 엄지손가락에서 흐르는 붉은 피! 눈이 먼저 놀라고 그다음에 오는 아릿한 통증. `이거, 큰일인 거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은 쉼 없이 뛰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알았다. 나에게 과호흡증후군이 있다는 걸.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도중, 가슴은 터질 듯이 벌렁거렸고 사지는 뻣뻣해져 그에 대한 응급처치를 또 해야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 긴장, 두려움 등이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란다. 이런 상황에 노출이 계속되면 공황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단다.

난 어려서부터 겁이 많았다. 내 어릴 적 기억을 모두 삼켜버린 수탉의 공격, 궁지에 몰린 동네 개가 열려 있던 내 방으로 난입한 사건 등으로 생긴 두려움일 뿐이라 치부했다. 그 두려움에서 나는 생각을 멈췄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그 두려움 끝에는 죽음이 있다는 걸 난 간과했다. 철학서와 문학 속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등의 글을 읽으며 난 언제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여겼다. 허세였다. 개똥철학이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게 남은 나이,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했다. 그림책에서 시작했다. 에둘러 돌아갈 필요가 없는 나이 아닌가! 제목에서 죽음을 언급한 <나는 죽음이에요/엘리자베스 헬란 라슨/마루벌>를 다시 꺼냈다. 산뜻한 그림과 덤덤한 듯 친절한 말투 속에 죽음에 대한 완곡한 진리들이 숨어 있는 책이다.

`나는 죽음이에요. 삶이 삶인 것처럼 죽음은 그냥 죽음이지요.'라며 담담히 시작한다. 화자가 죽음이기에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한다. 죽음은 귀여워도,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물에게도 찾아간단다. 시도 때도 없고 어느 장소건 찾아간단다. 가끔은 작고 따뜻한 손을 잡기도, 뱃속의 생명을 찾아갈 때도 있단다. 주름이 많은 사람은 자주 찾기도 한단다.

죽음은 `내가 사라져버리면 … 누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의 자리를 마련해 줄까요? 삶과 나는 하나예요.'라고 불멸이 있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도 해 준다. 죽음이 없다는 것은 삶도 없다는 말일 거다. 그래도 `내가(죽음)'두렵거든 사랑을 하란다. 사랑은 우연히 죽음을 만나더라도 절대 죽지 않으니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삶의 본질을 찾으란 말일 거다. 여기에 염려의 마음을 보태 `죽음을 찾지 말라. 죽음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라는 다그 함마르셀드(경제학자, 정치가)의 말을 난 덧붙이고 싶다.

삶과 하나이고, 사랑과 하나이고, 그리고 나와 하나인 죽음! 난 여전히 두렵다. 어떤 이유를 끌어다 붙여도 여전히 겁이 난다. 죽음에 대해 초연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리기엔 너무 큰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질 않은가! 겉으로 드러내기로 했다. 하여 남편과 같이 책을 봤다. 병원에서의 사태를 같이 겪었기에 본인보다 나를 더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단다. 손가락 다친 걸로도 숨이 멎으려 하는 두려움을 갖는데, 저승길을 어찌 혼자 보내냐며 울먹인다.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지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헤르만 카를 헤세의 말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죽음은 `오래 산 사람들의 삶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해요. 마치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찬 것처럼 말이에요.'라는 말로 주름이 많은 사람의 삶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나의 남은 날, 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현된 것이라는 걸, 주름 사이사이에 나의 이야기를 그득하게 채울 의무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행하며 보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