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自利)와 이타(利他), 자리이타(自利利他)
자리(自利)와 이타(利他), 자리이타(自利利他)
  •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2.01.13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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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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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남자는 문을 열고 그냥 나왔다. 그런데 뒤에 여자가 나오다가 자동으로 닫히는 문에 부딪히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걸 보고 뒷머리를 긁적이는 남자의 모습 위로 엑스(X)자가 그려진다. 몇 년 전 공익광고의 장면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해했지만 내가 자주 들리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그 광고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배려를 강요하는 광고를 만들 수 있는지 어이없어 한 것이다.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사람들에겐 너무 올드한 광고였던 것이다.

지금 어른이라고 규정된 범주에 해당하는 세대들은 공동체의 중요성, 이타적 희생의 강요를 교육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우선해야 하고, 내 이익을 포기해야 좋은 사람이라는 교육을 받고 산 것이다.

지금의 세대를 보자. 매체에서는 민지(MZ)세대라고 한다. 민지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주의이다. 개인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자리(自利)주의이다.

이타(利他)주의를 강요하고 교육하였지만 그다음 세대들은 자리(自利)주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는 모두 중요하다.

이 세상은 내가 중심이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없다. 내가 없는데 어떻게 이 세상이 있겠는가. 인식하는 나가 있어야 세상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이익은 아주 중요하다. 세상의 중심이며 세상의 전부인 내가 이익을 얻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민지(MZ)세대의 개인주의, 자리주의는 욕을 할 것도 없고, 존중해 주어야 할 일이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이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은혜이다. 은혜는 갚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전 세대의 이타적 희생, 공동체 주의 역시 무시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상이며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문제는 어느 것 하나만을 강조했던 분위기이다.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한데 한 가지만 강요한다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시선은 다른 한 가지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이제는 두 가지 모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두 가지를 어떻게 공유하며 조화시킬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함께 강조해야 한다.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 대종사는 사은(四恩) 중 동포은을 설명하며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서로 자리이타(自利利他)로써 은혜를 주고받았기에 그 은혜를 갚는 방법 역시 자리이타(自利利他)로써 해야 한다고 했다. 원불교에서는 이미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한 단어로 쓰인다.

원불교의 3대 종법사이신 대산 종사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과 인류가 영세토록 다 같이 잘 살아갈 생활 표준은 대종사께서 밝혀 주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도라, 이 표준대로만 살고 보면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고 일체 동포가 이롭고 현생도 좋고 내생도 좋으리라. 그러나 부득이 자리이타(自利利他)가 되지 않을 때에는 내가 해를 차지하는 자해타리(自害他利)의 도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불보살의 생활이니라.”

불보살의 생활은 우리 원불교 교도들이 지향하는 삶이다. 그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우리가 잘살아갈 표준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영세토록 다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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