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광가속기가 있는 도시
방사광가속기가 있는 도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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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우리가 삼라만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가시광선 덕분이다.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빛은 어둠을 몰아내면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을 깨우치는 것은 물론, 생명 에너지를 공급하는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22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해마다 그렇듯이 올 1월 1일에도 나는 어김없이 해돋이의 순간을 맞으러 새벽길을 나섰다. 청주 문암생태공원은 번잡함을 피해 자주 찾는 곳인데, 올해는 먼 우암산 정상의 전경을 새로 지은 아파트가 가려버리는 바람에 서둘러 무심천 둔치로 내려와 맑은 해돋이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해돋이의 장관은 온몸의 감각을 통해 충만했으나, 나는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추운 날씨 탓인가. 미리 충분히 충전을 했건만 휴대전화 배터리가 갑자기 방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꽁꽁 언 배터리를 겨드랑이에 끼워 기사회생을 시켰으나, 해는 이미 우암산 정상에서 멀찌감치 벗어나고 말았다. 그런 `과학 기술'의 갑작스러운 외면에서 인간의 감각과 빛의 위대함, 그리고 기본에 대해 생각한다.

올해 우리 도시 청주는 방사광가속기라는 설레는 과학의 시작과 만나게 된다. 그 위대한 첫걸음을 그동안의 우리는 그저 천문학적 규모의 국책사업 확보라는 자본적 효과에만 매몰되고 집착해 왔다.

태양으로부터 긴 여정을 거쳐 지구에 도달하는 가시광선의 존재를 항상 인식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세상은 그러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특히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지러울 만큼 쉽지 않다.

인간은 눈, 즉 시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의 가치는 당연한 듯 인식조차 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하물며 보통의 사람들에게 또 그들의 평범한 삶의 순간에 별다른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방사광가속기의 가치를 깊은 의미로 고민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사광가속기가 `전자/양자/중성자를 가속시켜 운동 방향, 충돌 등의 효과에서 방출하는 빛을 이용해 물질을 나노미터, 즉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초미세 단위로 들어다 볼 수 있다.(ICT 상식사전)'는 정도의 기본지식은 갖춘 시민성은 어떤가.

그리하여 일반적인 현미경으로는 관측하기 어려운 원자 속 입자를 관측함으로써 기초물리학과 생명과학, 나노과학, 의학 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리, 즉 `원초적 기본'에 충실한 방사광가속기의 도시로의 정체성 확보가 절실하다.

첨단의 방사광가속기는 물론 모든 과학의 덕목은 최종결과로서의 지식을 추구하는데 있지 않다. 그런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맥락을 깊이 성찰하는 일이 첨단 과학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초미세의 물질 구조이거나 살아있는 세포의 초절정의 움직임까지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는 방사광가속기는 `기본 중의 기본'인 원초적인 세계로의 접근과 관찰의 의미가 있다.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생명과학과 신약, 디스플레이 등 소재 부품 산업의 원천 기술 개발의 핵심 도시로의 결과적 가치는 전문가들에 의해 충실히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인력양성과 관련 산업의 유치와 육성, 지원은 청주의 새로운 위상 제고를 위해 모든 도시의 역량을 모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방사광가속기 가동을 위한 첫 삽은 올해 우리 지역의 가장 중요한 미래지향성이다. 방사광가속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이를 계기로 전문 과학기술자들의 분발과 더불어 그동안 우리가 관습과 무의식 속에서 무시해왔던 `기본'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사람과 도시'의 `원년으로 새해를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흐린 새벽별은 없다. 다만 우리가 흐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거나, 구름이 잠시 새벽별의 `기본'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기본'이 충실하면 세상은 반드시 밝아질 것이고, 더 길고 깊게 전진하는 힘이 될 것이다.

그날 나는 해 뜨기 직전과 산 정상을 한참 벗어난 사진만을 겨우 얻었다. 휴대폰의 `과학'으로 기록하지 못한 일출의 서광은 내 가슴에 `기본'과 `과정'으로 깊게 담았다. 세상의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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