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이라는 이름의 혜성
‘인구절벽’이라는 이름의 혜성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1.02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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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미국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인 한 대학원생이 우연히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혜성을 발견하고 교수에게 알린다. 두 사람의 계산에 따르면 지름 10㎞에 육박하는 이 혜성은 6개월 정도 후에 지구와 충돌한다. 그 위력은 지구의 전 생물체를 멸종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다음날 백악관을 찾은 두 사람은 조만간 지구가 겪을 파멸을 경고하고 긴급한 대책을 호소하지만 대통령의 반응은 시원찮다. 그에겐 오직 목전에 닥친 중간선거에서 이기고 자신이 내정한 대법관 후보자의 포르노 출연 전력이 드러나며 제기된 비판 여론을 잠재울 생각밖에 없다.

대통령은 끔찍한 소식을 국민에게 전하는 것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100% 확신할 수 있느냐”며 두 사람을 다그친 끝에 교수로부터 “혜성이 태평양에 떨어질 확률은 99.78%”라는 답을 얻어낸다. 대통령은 “70%로 정리하자”며 “100% 확신할 수 없는 잠재적 위험 요소에 불과한 만큼 추이를 지켜보자”고 결론짓는다. 그리고는 “국민에게 불필요한 공포감을 줄 수도 있다”며 이 문제를 국가기밀로 규정한다.

그런데 얼마 후 이 혜성은 잠재적 위험에서 현실의 위기로 돌변한다. 문제의 대법관 후보자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며 더 큰 위기에 빠진 대통령이 국면 탈출용으로 쉬쉬해온 혜성을 등장시킨 것이다.

먼저 긴급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지구가 직면한 위기를 알리고 우주선을 보내 대기권 밖에서 혜성을 폭파하겠다고 호언한다. 이어 자신이 직접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전국에 생방송 한다. 지구를 구하는 영웅 코스프레를 하면서.

최근 화제를 모은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한 대목이다. 영화는 전 지구적 위기까지도 정치놀음에 말아먹는 지도층의 무한한 권력욕을 꼬집었다.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그렇다 치고 지금 대한민국을 향해 낙하하는 혜성은 없는 것일까? 바로 떠오른 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높은 자살률이었다. 수년간 수그러들 줄 모르는 이 두 현상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지구를 향해 질주하는 거대한 혜성이라고 하면 지나친 걱정일까?

지난 2018년 0점대로 추락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은 반등은커녕 계속 떨어져 올해 3분기 역대 최저인 0.82명을 기록했다. 상식대로라면 여성 1명이 배우자를 만나 2명을 출산해야 인구가 유지된다. 통계청은 2025년 합계출산율이 0.52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50년 후인 2070년 인구는 현재 5180만에서 3000만명대로 줄어든다. 2750년께 인구가 제로가 돼 한국은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예측까지 등장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OECD(국제협력개발기구)에서 부동의 1위다. 10~ 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미래 세대가 미래를 부정하는 나라의 미래가 희망적일 수는 없다.

인구학자들은 2030년까지를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그때까지 인구 감소세를 극복하고 세대 간 인구 불균형에 대비한 비상한 대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국가 존립 자체가 흔들릴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은 생산인구 5명이 노인세대 1명을 부양한다. 그러나 50년이 지나면 생산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절박한 시대가 도래한다. 국가재정과 생산세대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도,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며 대선판을 종횡하는 후보들도 영화 속의 대통령처럼 목전에 닥친 이 혜성을 직시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2030을 위한 기본소득·기본주택, 신혼부부 생활자금 지원 따위의 급조된 날림 정책으로 `인구절벽'이라는 이름의 혜성을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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