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지승지불 2
대통지승지불 2
  •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1.12.3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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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

누더기 옷을 입고 풀로 만든
대자리를 깔고서 창 앞에 누우니
덧없는 한 세상 헛된 명성은
한 올의 털처럼 가벼워라.



반갑습니다. 무문관(無門關)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는 괴산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격외도리형 공안인 무문관 제9칙 대통지승(大通智勝) 2입니다.

법화경(法華經)에도 등장하는 대통지승지불은 가장 큰 깨달음에 도달한 부처님을 십겁이라는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시간과 좌선 도량이라는 무진의 공간을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좌선 도량에서 무한히 긴 시간을 수행해도 깨치지 못한다는 이 지독한 설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불(成佛)이니 불성불(不成佛)이니 하는 이원론적(二元論的)인 관념에 깊숙이 빠져 억겁의 긴 시간과 좌선의 도량이라는 공간을 알음알이로 헤아려 묻고 있는 학인에게 흥양 양화상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통지승지불이 성불할 수도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지장보살이 이 세상에 성불하지 못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 성불할 때까지 지옥의 문전 앞에서 제도하며 성불하지 않겠노라.”라고 서원한 대승적 서원과도 같은 맥락이지요.

무문관의 무문혜개 선사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큰 서원을 설하고 있습니다. 무문혜개 선사가 속한 가풍의 임제 선사의 어록인 임제록에서는 대통지승불에 대한 전혀 다른 빛깔의 답을 볼 수가 있는데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통이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만법의 무성과 무상을 통달함을 뜻합니다. 또한 지승이란 일체의 모든 곳에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 입니다. 부처란 청정한 마음이 시방법계를 사무쳐 비추는 것을 이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10겁 동안 도량에 앉았다.”하는 것은 10바라밀을 닦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불법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불본불생으로 부처는 본래 나지도 않고(佛本不生), 법본불멸, 법이란 본래 없어지지도 않는(法本不滅)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무엇이 나타나겠는가?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뜻은 불불능갱작불,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는 않는다(佛不能更作佛)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옛사람은 말씀하시기를 “부처는 항상 세간에 계시면서도 세간법에는 물들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수증일여(修證一如)라이니 불도를 이루려는 마음 또한 하나의 번뇌임을 일깨우게 하는 대목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격외도리형 공안인 무문관 제9칙 대통지승(大通智勝) 3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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