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그러나 백 가지의 감정이 들어있는 말, 엄마!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그러나 백 가지의 감정이 들어있는 말, 엄마!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1.12.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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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그리스 신화 중 스핑크스가 내준 퀴즈가 있다. “목소리는 같으나 발이 네 개가 되기도, 두 개가 되기도 하고, 세 개가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알다시피 답은 `사람'이다. 세 발이 된다는 것은 나이 들어 지팡이의 도움을 받는 것을 비유한 말인데, 내 엄마는 그도 넘어섰다. 뇌출혈로 불편해진 오른쪽 삭신, 젊어 고생한 탓에 고질병이 된 관절들 때문에 엄마는 `엉덩이 걸음'으로 화장실을 가신다.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한 엄마의 안간힘이다. 그 뒷모습은 참으로 가엾기 그지없다. 나의 엄마….

요즘 모 방송 노래경연 결승전에서 무명 가수 박창근이 부른 노래가 있다. `엄마'라는 제목의 노래다. 자작곡이란다. 나이 오십인 사내가 엄마를 수없이 부른다. 떨림으로 애절함으로 울먹임으로 다급함으로 감사함으로 다정하게 그리고 목 놓아 부른다. 엄……마……라고. 목소리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백 가지 감정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엄마'라는 단 두 글자와 간결한 그림으로 엄마에 대한 만 가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낸 그림책이 있다. 강경수 작가의 <나의 엄마/강경수/그림책공작소>가 그러하다. 우리는 살면서 `엄마'라는 단어를 얼마나 부를까?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생명줄이 달린 먹을거리와 엄마를 동일시하는 말인 `맘마'로 시작해서, 나를 지켜주고 나의 온 우주인 대상을 부르는 경쾌함과 안정감이 있는 엄마! 관심의 대상이 밖으로 향하는 시기인 사춘기엔 짜증과 비난 섞인 엄마! 그 시기도 지나면 잠시 엄마 손에서 벗어나 부르는 횟수조차 적어지고 건조함이 묻어 있는 엄마! 결혼식장에서 엄마와 눈이 마주치며 흐르는 눈물, 이 시점은 안쓰러움이 있는 `엄마!'가 되기 시작하는 변곡점이 된다. 그리고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엄마'라 부르는 짧은 시기가 지나면 목 놓아 부르게 되는 `엄…마……!' 부모와 자식의 연은, 이 책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누군가의 자식에서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과정을 그린 뒷부분의 몇 장면은 독자로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짓고 희망을 보게 한다.

<나의 엄마>의 작가 강경수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식에서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거대한 사랑, 그 순환적 운명을 이야기하고 싶어 마지막 장면과 앞표지의 세로 띠지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선물인 듯 하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장착한 선물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거대한 사랑을 이루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 본다.

문화와 예술이 주는 힘은 이렇듯 강렬하다. 짧은 글, 짧은 음률일지라도 가슴속에 스며들어 마음과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작가가 전해 주는 글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목소리와 음으로 전해 주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다.

사랑이 담긴 `엄마'라는 호칭을 받을 수 있는 존재, 나도 그 자리에 섰다. 나는 어디까지 왔을지 생각 해 본다. 백 가지의 감정이 담긴 만 개의 사랑을 주는 자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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