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다
벽을 넘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1.12.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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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세 밑이다. 후회가 밀려온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둔해진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생물학적 나이를 거스르지 않으니 서글프다.

코로나19와 함께 산지 2년. 일상은 달라졌지만 사회가 만들어 놓은 벽은 그대로다. 직업에 대한 귀천이 여전하고 학벌과 학력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현종 시인의 시 구절처럼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면 그 섬에 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은 뛰어넘거나 허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직업, 학력, 학벌, 장애, 성별, 지역 등으로 만들어낸 벽은 무너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높아지고 더 공고해졌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외치면서도 왜 이런 벽을 허무는 데는 주저할까.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대졸 취업률은 65.1%로 전년(67.1%)보다 2%p 하락했다. 2020년 취업률은 지난 2011년 대졸 취업률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문제는 기능대학은 물론 전문대와 대학 모두 취업률이 하락한 반면 일반 대학원 취업률은 상승했다는 점이다.

학제별 취업률을 보면 기능대학은 2019년 80.0%에서 지난해 78.8%로 하락했다. 전문대학은 68.7%, 일반대학은 61.0%로 60%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일반대학원 취업률은 전년(79.9%)보다 0.3%p 상승한 80.2%를 기록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 소재 대졸 취업률(66.8%)이 비수도권(63.9%)보다 2.9%p 높았다. 대졸자 월평균 소득은 262만9000원. 학제별로 보면 학부 244만1000원, 석사 372만2000원, 박사 581만9000원이다. 학부와 일반대학원의 월평균 소득 차이는 205만2000원, 일반대학원 내에서 석·박사의 월 평균 소득 차이는 209만7000원이다. 학력이 높을수록 소득이 높고 지방 소재 대학 졸업자보다 수도권 대학 졸업자가 취업률이 높은 현실. 우리는 어쩌면 이를 상식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학력과 학벌이 밥 먹여 주느냐고 비판하면서도 높은 교육열은 식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 OEC

D가 발표한 `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청년층(만 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은 69.8%로 OECD 국가(평균 45.5%) 중 1위다. 그러나 교육단계별 성인의 상대적 임금(고등학교 졸업자 임금=100)은 중학교 이하는 79.3(OECD 평균 82.4)인 반면 전문대 108.3(〃 119.6), 대학 136.3(〃 142.8)으로 OECD 평균보다 낮다.

중학교 성적으로 일반고와 특성화고 진학을 결정하고 고등학교 성적으로 대학 간판을 재단한다. 학생의 잠재적 재능을 키워주는 게 교육의 역할이라면서 특성화고를 졸업해면 대학을 가도록, 대학을 나오면 더 높은 학제를 요구한다.

최근 전교 4등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특성화고를 선택한 청주 운호중 이성빈군을 만났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의사였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의사가 제일 좋은 줄 알았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 후 의사는 나의 꿈이 아니고 사회의 박힌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단다. 결국 고교 3년을 어떻게 보낼지를 두고 고민한 성빈군은 전기기술자의 길을 택했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길을 스스로 찾았다.

사회가 만든 편견의 벽을 청소년이 스스로 깨야 하는 현실 앞에서도 대선 후보들은 오늘도 비전보다는 가족사를 총알 삼아 볼썽사나운 정쟁을 벌이고 있다. 벽 앞에 또 다른 벽을 마주하니 앞이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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