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동 아줌마들
대상동 아줌마들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12.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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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하루도 심심하다거나 무료하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일이 없어 보인다. 하다못해 김치 부침개를 구웠다고 불러대든지 찬밥이라도 함께 비벼 먹자는 식으로 이들은 날마다 한집에 모인다. 박씨네, 송씨네, 이씨네, 나이도 엇비슷하고 농사도 그만 그만, 혼자 사는 것도 같다.

“우린 이렇게 살아요.” 눈만 뜨면 같이 어울리는 이들은 말이 이웃사촌이지 형제들보다 가깝고 더 끈끈하다. 더불어 사는 생활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서 3000여 평 논밭을 경작하는 박 아줌마는 트랙터를 몰고 소독기를 장착한 차를 운전하기도 하는 전문 농업경영인이다. 오늘은 네 집, 내일은 저네 집, 품앗이처럼 돌아가면서 함께 일을 하는데, 그러나 품앗이라는 거래의 냄새가 나지 않고 언제나 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시간이 없는 엄청난 활동량인데도 일에 지친 피로한 내색은커녕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한다.

“얼굴이 거칠어요, 좀 가꾸고 편히 살지,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한대요?” 옆구리 찌르듯 의향을 떠보았더니 농사라고 삼백육십오일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란다. 요령껏 집중해서 일함으로 따져보면 반 반? 즐기는 여가는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단다.

도시 사람들은 햇볕에 그을린 볼품없는 겉모습만 보고 왜 저렇게 사나 한심해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무럭무럭 자라주는 채소나 노랗게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바라볼 때의 뿌듯함을 도시인들은 어디서 느끼느냐고 반문한다.

고추가 무럭무럭 자랄 때, 배추가 탱탱하게 속이 차오를 때, 콩잎이 나풀거릴 때, 자고 일어나자마자 밭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어찌 알겠느냐면서 덧붙여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일은 즐거움 그 자체란다. 그들은 땀 흘리며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한없이 베푸는 모정을 학습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하나같이 반듯하다. 직장 따라 도시에 나가 살면서도 어김없이 주말이면 고향으로 달려와 엄마를 돕는 아들들, 어떻게 하면 엄마가 좋아할까? 늘 생각한다는 송 씨네 아들,

`엄마가 롤모델이라나 뭐라나'하면서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이 씨네 딸들,

부모들이 거짓 없이 소탈하게 네 것 내 것 없이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을 보고 자란 자식들이 어찌 빗나가거나 이기주의자가 되겠는가?

생활이 곧 교육 아니던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괴로움이 없고 사욕을 채울 일이 없으니 평안하고 자유롭다.

서로서로 내가 더 일하고 내가 더 주자는 한마음이어서 그들은 동네 앞에 펼쳐진 들판처럼 품들이 넓다. 벽 하나 사이의 이웃집도 모르고 살던 도시 생활, 출입문에 잠금장치를 해 두고 비밀번호로 내통해야 하는 그 쓸쓸한 삶에 익숙해진 나의 어쭙잖은 사고방식을 그들은 무장 해제시켜버렸다.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작은 고뿔에도 “아이, 딱해라”하면서 아파해주는 자상함이 대책 없이 좋아서 오늘도 나는 주책없이 그들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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