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이는 시간
공들이는 시간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12.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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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관계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물론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관계를 맺는 일이라 할 수 있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관계 속에서 지속되는 사람들은 실상 많지가 않다. 관계가 끊어지는 이유 중에는 일 때문에 맺어지거나, 관심사가 다르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관계를 맺는다는 것만큼 신중해야 하는 일은 없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어린왕자의 대화를 통해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5천 송이의 장미꽃 보다 자신의 장미꽃 한 송이가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공을 들인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길을 들인 것들에도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매년 두어 번씩은 작정을 하고 일주일 남짓 여행을 간다. 그런데 여행일정을 잡으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우리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이다. 우리 집에는 밖에서 기르는 강아지 두 마리와, 우리 집을 제 집이라 생각하고 오며가며 밥을 얻어먹고 살아가는 길고양이가 대여섯 마리, 방 안에서 키우는 장애 묘 한 마리가 있다. 그리고 구피까지, 대 가족이다. 아침 일찍 일을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녀석들의 밥 좀 챙겨주라고 부탁을 하자니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잘 챙겨 줄지도 믿을 수가 없다. 궁여지책으로 작은 딸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한 달 전쯤 미리 휴가일을 맞춘다. 작은 딸아이는 나만큼 동물들을 아끼는 아이라 믿고 맡길 수가 있다. 하지만 이번 연말은 여행을 포기했다.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는 아들과 딸이 이사를 앞둔 터라 일정이 여의치가 않게 되었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이 없다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여행이다. 이런 상황을 다른 이가 만든 일도 아니고 내 스스로 만들었음에도 가끔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지인과 애완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사달라고 졸라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강아지나 고양이가 병이 들면 누가 병원에 데리고 갈 것이며, 혼자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을 텐데 외로울 거라며 아이들을 겨우 달랬다고 했다.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빠져서 아프거나 불편한 일이 생긴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남이 기르는 모습을 보며 언제나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할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길들이는 일은 아닐까. 길들여진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 자신의 마음과 시간을 온전히 내 주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오래된 친구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관계 맺기를 잘해야 하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에도 마찬가지이다. 순간 혹하는 기분에 집에 들여 놓고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다시 내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렇게 버림을 받은 동물들은 마음에 상처를 받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깊어진다. 내 자식이 병들고 귀찮다고 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일도 그렇다.

어린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름답게 하는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각박한 세상, 살기 힘들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따뜻한 손길이 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인해 우리 세상도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이제 올 한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리고 강추위가 며칠째 전국을 꽁꽁 얼리고 있는 중이다. 부디 힘없는 생명들이 사랑으로 위로 받는 따뜻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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