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원하거나 말거나
국민이 원하거나 말거나
  • 박명식 기자
  • 승인 2021.12.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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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문재인 정권을 창출했던 적폐청산이 새삼 무의미해졌다. 적폐청산의 출발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광화문 촛불집회가 도화선이 됐다. 당시 국민들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손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는 결국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고 최순실을 비롯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 김종 전 문체부차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석 전 비서관, 차은택 CF감독,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적폐세력들을 줄줄이 감옥으로 보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1년 12월 24일 성탄절 아침, 문재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수감자 3094명의 특별사면 결정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을 사면 명단에 올린 당위성에 대해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환영의 뜻을 보냈지만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시민단체는 “촛불 시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이뤄진 결정이고 법원이 판결한 내용을 형해화한 사면권 남용이자 국민 배반 행위”라며 크게 반발했다. 박 전 대통령을 조기 사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국민 여론도 70%에 달했다.

이런 이유로 국민통합과 포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이번 문 대통령의 사면 결정은 국민으로부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외면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코로나19 감염병 창궐로 인해 국민의 경제적 피폐함이 극치를 달리고 있다. 대선을 2개월 남짓 앞두고 여야 후보는 서로 자신의 얼굴에 침 뱉기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의 이번 박 전 대통령 사면 결정은 정치 계파 간의 대립을 더욱 부추기고 민심까지 더 양분화 시켰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정권을 창출한 현 정부가 국민통합이라는 새 명분을 내세워 22년이 확정돼 수감된 범죄자를 5년도 채 안돼서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로 사면시킨다면 법은 있으나 마나다.

처음부터 감옥에 넣지를 말든가! 수감기간을 채우든가! 대통령 사면권을 없애든가! 정치적 사정에 따라 풀어주고 말고 하는 자체가 적폐청산이 아니라 국민농단이다.

적폐청산이란 오랫동안 쌓여온 폐단을 뜯어고치겠다는 뜻이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재벌이라고 해서, 중요 정치인이라고 해서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사면을 남용하는 것이 이 나라의 법이라면 이 또한 반드시 뜯어고쳐야 할 적폐이다.

이번 문 대통령의 사면 결정은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는데 앞장섰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보수진영의 분열 조장을 위한 청와대와 민주당의 고단위 전략이라는 오해를 낳기에 충분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공으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사법 총수까지 올랐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선 직전에 와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찬성하고 정당화하는 것도 그가 주장하는 공정이 허구임을 드러내는 얕은 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이 원하거나 말거나, 국민이 힘들거나 말거나 오로지 정권을 잡기 위해서 법을 남용하고 온갖 위선을 자행하는 선거가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까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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