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얼굴 한 번 더
정인이 얼굴 한 번 더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12.26 1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 연말쯤에는 조금 잠잠해지리라 기대하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르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 시작된 거리 두기에 우리의 마음이 얼어붙는 듯한 요즘 한 아이의 얼굴이 시리게 다가온다. 바로 정인이 얼굴이다.

이제는 입양 전 또래 아가들과 다르지 않게 그 누구보다 활짝 웃고 있는 정인이 얼굴조차 슬프게 느껴진다. 정인이 살인을 적극적으로 희망했다고 볼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재판부가 양모의 형을 무기징역에서 징역 35년으로 감형해 주었기 때문이다. 괜스레 정인이 사진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그렇게 한들 고통 속에 죽어간 그 아이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재판부의 판단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눈을 뗄 수가 없다. 비슷한 또래의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재판부를 비판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그들을 무인도에 격리시키고픈 내 판단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재판부라고 어찌 감형 결정이 칼로 무 자르듯 쉬웠을까. 이미 무기징역이라는 강한 처벌에도 분노로 가득 찬 민심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었을 테지만 한쪽의 입장에 치우쳐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자리이기에 고심에 고심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교실에서 두 아이가 치고받고 싸웠다고 더 많이 때린 아이를 선생님이 피해 아이의 말만 듣고 나쁜 아이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되듯이 감형 결정을 내렸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머리의 이성이 내민 손을 가슴의 감성이 손을 뻗어 잡아주지 못해 두 손은 각자 허공을 헤매고 있다.

사적모임 인원제한으로 가족과 지인들과 모여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는 없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캐럴이 흐른다. 작년에는 보기 어려웠던 눈도 올해 겨울에는 간간이 내려 하얗게 변한 세상을 처음 마주한 둘째 아들은 손이 시리지도 않은지 신기한 듯 눈을 만지고 또 만져보았다. 뒤늦게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손을 내밀며 “추워 추워” 하는 아이를 안아주며 마음 한구석이 저려온다. 말로도 글로도 자신의 아픔과 고통, 외로움과 서러움을 표현할 수 없었던 어린 나이에 차가운 병실 침대에서 숨을 거두었을 정인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아이의 무덤에도 소복하게 눈이 쌓였을까. 유난히 바람이 찬 이 겨울에 여전히 찬 바닥에 누워 있어 얼어버렸을 아이의 몸은 이제 아무도 안아줄 수 없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할 때면 으레 모두가 가슴에 세우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새해 소망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내년에는 부디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되어 마스크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고 그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사소한 기쁨이 아닌 엄청난 기쁨이라는 것을 코로나로 잃어버린 몇 년의 시간 동안 뼈저리게 느꼈으니 이제는 코로나 자체를 과거형으로 묻어두고 싶다.

더불어 내년에는 어여쁜 아이들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뉴스에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큰 사건이 일어나야 법이 개정되고, 제정되는 아픈 역사는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렇게라도 사회의 안전망이 더욱 견고해져 더 많은 생명을 지켜내기도 하지만, 그 밑바탕이 되어버린 가여운 목숨은 누가 어떻게 껴안아줄 수 있을까. 하나 더 욕심을 내자면 이미 천사가 되어버린 정인이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이제는 이 아이가 하늘에서나마 웃을 수 있는 소식이 너무 늦지 않게 들려오길 희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