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21.12.23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드리마 `오징어 게임'에서 극 중 인물인 형사가 사라진 형을 찾으러 형이 머물렀던 고시원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몇 권의 책이 슬쩍 비쳐진다. 라캉의 `욕망이론', 카뮈의 `이방인'르네 마그리트 등이다. 다들 눈치 챘겠지만 감독은 이 책들을 통해 드라마 전개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았다.



# 라캉의 욕망이론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재해석하여 “개인은 타자(他者, Other)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난해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해석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그리고 독자 여러분 모두가 지니고 있는 어떠한 욕망은 누군가의 욕망에서 비롯된 욕망이라는 것이다. 진짜 주체인`나'의 욕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의 욕망이론은 무의식과 언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언어를 사용하기에 개인의 무의식은 그 언어로 구성된다는 것이 라캉의 이론이다. 그런데 그 언어는 본질적으로 타자의 언어(영아기에는 엄마, 유아기에는 주변 교사들, 아동기에는 주변 친구들 등)이기에 무의식은 결국 타자의 담론이 된다. 즉, 사람은 언어 속에서 태어나고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데 그 언어는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담론이자 욕망인 것이다.



# 진짜 나의 욕망은

올해 초 주식 광풍이 불 때 생애 처음으로 주식 몇 주를 샀다. 내 주변에서 주식으로 재미 봤다는 사람들이 많을 때였다. 서울 사는 사촌 여동생 부부가 전세금 등을 탈탈 털어 영끌로 동탄에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2년간 좁디좁은 친정집에서 얹혀사는 것을 무릎 쓰면서까지 웃돈 주고 청약티켓을 샀다.

나는 왜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주식이라는 것을 사게 되었을까. 사촌 여동생 부부는 신혼의 단꿈을 포기한 채 친정살이까지 하면서 아파트에 매달리게 되었을까.

라캉은 욕망의 척도는 타자라고 했다. 따라서 남들도 원하는 것, 남들만큼 사는 것,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것을 욕망한다. 우리의 욕망이라는 것을 돌아봤을 때 그것을 바라봐 주는 타자가 없다면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바라보는 것들이 나를 존재케 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주체인 나는 주체적으로 자신을 욕망하기보다, 그 사회가 공유하는 욕망의 가치에 휘둘리게 된다. 이 욕망은 오롯한 나의 욕망이 아니기에 아무리 추구해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욕망 자체를 욕망하게 된다. 욕망 자체를 욕망하는 것 `오징어 게임'의 내용이기도 하다.



# 불혹(不惑)에…

타자의 가치관에 미혹되기보다 주체적 가치관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공자(孔子)는 논어(語)에서`불혹'이라 했다. 불혹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모색하고 추구하는 진정한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불혹, 이 역시 고민과 방황으로 점철되는 과정이겠지만 그래서 여전히 흔들리겠지만, 흔듦의 뿌리가 타자(세상)가 아니라 주체인 `나'안에 있다는 것이 불혹 이전과 구분된다.

주식과 투자, 남들에게 돋보이는 자리, 승진 자리를 끼웃거리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인가, 진짜 `나'의 욕망인가. 불혹(不惑), 50대 중반에 나의 무의식과 차분히 치열하게 대면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