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아직 갈 길 멀다
공정사회 아직 갈 길 멀다
  • 이형모 기자
  • 승인 2021.12.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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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이형모 선임기자
이형모 선임기자

 

김진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빠찬스'논란으로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 수석의 사의를 즉각 수용했다. 불공정 이슈가 확산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 수석 아들은 최근 여러 기업의 채용 과정에 지원하면서 자기소개서에 부친의 이름과 직업을 기재했다고 한다. 성장과정 항목에는 “아버지께서 민정수석입니다”라고 적었다.

학창시절 항목은 더 어처구니없다. “아버지께서 많은 도움을 주실 것”이라고 썼다. 성격의 장단점에는 “제가 아버지께 잘 말해 이 기업의 꿈을 이뤄 드리겠다”고 적었다.

자기소개서에 부모는 물론 친인척의 직업도 기재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부친의 직위를 노출했고 그것도 모자라 공적 권한과 영향력을 이용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황당함을 넘어 심한 압박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려 다섯 군데 회사에 이런 식으로 입사지원서를 작성해 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민정수석은 사정기관을 총괄하기 때문에 직위의 무게감이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의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청와대 핵심 참모로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다.

김 수석은 아들 문제가 불거지자 “있을 수 없는 일로 변명의 여지가 없고,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들이 불안과 강박 증세 등으로 치료를 받아왔다고도 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평범한 아버지를 둔 젊은이들은 큰 상처를 받았을 게 분명하다. 이런 자기소개서를 내고 취업을 했다면 다른 누군가는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을 것이다.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박탈감에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1173명을 대상으로 부모 능력이나 가정환경이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0.8%가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했다. 예전보다 요즘 들어 부모 능력이나 가정환경이 취업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고 느낀다는 응답이 67.2%나 됐다. 무엇보다 취업을 준비하다가 `부모 능력이나 가정환경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는 젊은이들도 절반을 넘는 53.1%였다.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문제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공정한 사회구현을 국정운영 기조로 내세웠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를 가장 많이 괴롭힌 것도 바로 이 공정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보안요원의 정규직화 논란이 `문재인 정부는 공정을 지향하는 정부인가'라는 의심에 불을 붙였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 당시 한국 국가대표 역차별 논란,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의 도덕성 논란,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를 거치면서 공정은 정권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공정이 이슈다. 여야 대선후보와 가족 리스크로 등을 돌리는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책과 비전은 사라지고 후보의 사생활, 가족, 인성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우리 정치의 퇴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공정성을 둘러싼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공정성 논란은 진행형이다. 이제는 시대적 과제의 진전을 체감할 수 있는 실용적 개혁의 성공과 효능감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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