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즈음
동지 즈음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12.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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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음식을 먹는 것은 추억을 먹는 것이라 하던가? 미국 메인주 시골 마을 프리덤에 있는 40석의 작은 식당 <로스트 키친>이 <바다를 건너갈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점 12곳 중 하나>로 블름버그가 선정했다고 한다. 이 식당 오너 셰프 <에린 프렌치>는 요리의 가장 강력한 힘은 음식의 맛을 오래가는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서 금가루가 뿌려지거나 핀셋을 이용한 화려한 음식보다 한입 먹는 순간 꼭 안아주는 느낌이 드는 음식이어야 한다고 좋은 음식이란 사랑을 맛보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했다.

일단 음식을 먹고 나면 며칠 몇 달 몇 년 뒤, 남는 것은 음식을 먹는 동안 느꼈던 감정만 오롯이 남기 때문이란다.

음식은 추억이다? 신축년 올해도 다 지나 동지가 가까워졌다. 올해 동짓날은 12월 22일, 1년 중 가장 밤이 긴 날이다. 예전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했는데 새해에 버금가는 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실제로 고대에는 음력 11월이 한 해의 시작이었으며, 동짓날이 새해 첫날이었다고 한다. 왜? 하는 의문에 이어 깨달음이 온다. 우리가 흔히 아는 12肢(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중 첫 자인 子월이 동지가 있는 11월인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동짓날을 기해서 차츰 밤이 짧아진다는 것, 나는 여기서 희망의 낌새를 상상한다. 어쩌면 새봄이 시작하는 새움이 싹트는 지점이랄까?. 떨어지다 떨어지다 바닥을 치면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희망이 생각나는 동짓날 아닌가? 동지가 지나면 날마다 노루꼬리만큼씩 해가 길어진다고 했다. 농경시대에서 길어지는 해는 삶의 희망 같은 것, 동지에 팥죽을 끓이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감히 상상해 본다.

설날, 하면 떡국, 추석, 하면 송편이듯 동짓날이면 팥죽이다. 동지 팥죽 한 그릇이 열두 달 보약보다 났다는 할머니 말씀도 떠오른다. 동짓날이면 집집이 팥죽 끓이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고샅 가득 넘치고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내달리며 신이 났던 어릴 적의 동짓날을 추억한다.

얼음 둥둥 뜬 동치미와 뜨거운 팥죽을 후후 불어가며 떠먹던 일, 장독대에 놓아두었다가 차게 식힌 팥죽을 밤참으로 먹으면서 부르르 몸을 떨던 일, 그런가 하면 곳간이며 대문 굴뚝같은 곳곳에 붉은 팥죽을 뿌리며 작은 소리로 고시레, 고시레를 뇌이시던 할머니, 장독대 앞에서 동서남북향으로 돌며 번갈아 여러 번 머리 조아리고 절을 하시던 모습도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내가 동짓날마다 팥죽을 쑤는 것은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 생각 때문이지 모른다. 혁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생활방식이 모두 달라진 우리 생활에서 요즘의 동지는 그 존재감마저 희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팥죽을 쑤는 이웃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거기에다 또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게 음력으로 초승에 동지가 들면 애기동지요, 중순이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던가, 더구나 애기동지에는 팥죽 아닌 팥떡을 해야 한다던가, 그 이유는 애기동지에 팥죽을 끓이면 어린아이들에게 잡귀가 침범한다나?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매해 팥죽을 끓였다.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인데 왜 그리 까다로운가? 머쓱한 마음이기도 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동지면 무조건 팥죽을 끓였다. 애기동지인 지난해도 그랬다. 동짓날 팥죽을 끓이지 않으면 설날 떡국을 안 끓인 것처럼 내 사전엔 없는 일이다.

매년 어김없이 하던 연례행사, 식구들이 싫어했다면 모를까 좋아하기까지 한 팥죽을, 지금 생각하니 추억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던 대로 앞으로도 주욱 동짓날이면 팥죽을 끓일 것이다.

올해도 팥죽을 쑤면서 아이들을 불러모을 생각이다. 내가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듯 내 아이들도 먼 훗날 추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은 추억이다. 에린 프렌치의 말을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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