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넘어
불안을 넘어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12.20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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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병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난 가끔 불안하다. 견딜 수 없이 불안할 때면 발이 약간 땅에서 떨어진 듯한 기분, 자기파괴에 관한 생각들, 타 도시에 서 살고 있는 아이들 걱정 등 일어나지 않을 일들과 지나친 좌불안석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인지심리의 조언대로 불안을 잡기 위해 가만히 사실 체크를 또박또박 하고 분노는 뒤에 숨겨진 핵심 감정을 찾아내라는 조언을 듣는다. 생각해보면 일이 많을 때 종종 겪는 현상 같다. 분노는 조금 더 다루기 까다롭다. 특히 요즘처럼 갱년기 증상이 의심되는 계절엔 더욱 내 감정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다. 말인즉슨 내가 나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

그동안 공감능력이 뛰어난 줄 알았고, 언제나 친절하고 서글서글했으며 착하단 소리까지 들으며 살았던 내게 내면의 지각변동으로 혼돈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으나 좀 더 나다운 `나'에 접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고무적인 현상이라 여기고 사춘기 시절처럼 나에 대해 다시 과몰입 중이다. 하지만 이따금 상황 앞에 새로운 감정이 나를 압도하는 것에 당황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알 수 없는 짜증과 상대적 박탈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좌절과 상실 등은 수시로 나를 괴롭힌다. 이것과 동시에 이런 감정은 내게 새로운 호기심과 충동, 관심을 일으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것을 시도해 보게도 한다.

그리하여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펜션을 뒤졌다. 그동안 숨을 못 쉬고 죽어가는 밑에 돈을 긁어보았다.(내겐 빳빳한 오만 원권 현찰이 꽤 있다) 코로나 19 상황이 다시 심각해지면서 한시적으로만 문을 연다는 휴양림을 기적적으로 예약했다. 이런 행운이 내게 찾아오다니 `이게 실화냐'하며 서둘러 짐을 꾸렸다. 최소한 간단하게. 얼마 전부터 16:8 간헐적 단식을 하며 속을 다스리고 있기에 먹을 것도 그 닥 필요하지 않았다. 환경이 다른 곳에서의 독서와 산책은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멍 때리고 걷기만 계속 하며 느끼는 청량감은 영혼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희끗희끗 겨울의 민둥산은 백발이 되어 가고 있었고 거센 바람에도 김장철 지나 버려진 배추는 늠름하게 땅에 발을 묻고 서 있었다.

잔잔한 저수지 물길을 따라 조성된 데크는 어둑해지자 알전구가 환호하며 일제히 커지더니 밤하늘의 별이 쏟아져 내린 듯 아름다웠다. 춥고 어두운 데크를 한참 걸었다. 함께 걸어주는 전구의 불빛은 세상 누구보다 든든하게 내가 걷는 길을 지지해 주었다.

임마누엘 칸트는 행복해지기 위해선 두 가지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첫째는 정언 명령에 따르라는 것, 즉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어야 한다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지키는 사람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칸트답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 안의 불안과 분노의 감정은 다시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아니, 가라앉혔다. 어쩌면 나는 지금껏 나의 반쪽 감정을 순교시키며 사회적 감정만을 스스로 강요했는지 모른다. 자신은 물론 타인조차 도구적으로 대했다. 보편적 양심에 기대기보다 공동체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며 나를 돌보지 못했다. 나에게도 있는 치사하고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아주 고약한 아집을 이제는 솔직함의 이름으로 잘 다듬어 보려 한다. 그리고 보편적 준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나와 내 주위를 돌보아야 할 것이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일에 지쳐서는 안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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