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 승인 2021.12.19 1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깊고 굵은 주름 움푹 꺼진 얼굴이 겨울나무를 닳았다. 푸석푸석하고 피곤하게 내려앉은 눈꺼풀, 사내는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화물차 앞유리에 끼워져 있는 전단지를 말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금세 겨울바람에 몸을 실은 전단지는 주차장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너울너울 춤을 추며 차 밑으로 숨는다. 빈번한 홍보물에 관심보다는 외려 식상한 지 사람들은 외면한다. 불만스럽게 툭툭 뽑아 귀찮은 듯 읽어보지도 않고 날려 보내기 일쑤다. 때문에 주차장 바닥에 밟히고 밟혀 조각조각 흩어진 아파트 분양, 의류 세일 전단지는 오체투지가 된 낙엽처럼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다. 그럼에도 어느 날부터 자동차 와이퍼나 손잡이에 꼭꼭 끼워져 있는 유인물을 챙겨드는 일이 자연스러운 나다. 어쩌다 덤으로 끼워져 있는 판촉물 물티슈는 횡제 한 듯 괜스레 기분이 좋다.

어슴푸레한 저녁 아슴아슴 내려앉은 어둠이 짙어진다. 네온 불빛이 쏟아져 내리는 거리, 오색불빛이 찬란한 유인물의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다. 발 딛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유리알 같은 대리석 바닥, 주부들의 로망을 담은 매력적인 주거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뿐인가 발길 닿은 곳곳마다 세련된 디자인과 심플한 수입자제로 시공된 내부와 가구들이 줄을 잇는다. 모두가 한마음인 듯 방문한 이들의 얼굴빛은 붉게 홍조를 띠고, 눈빛은 불빛보다도 더 반짝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그럼에도, 난 이방인이었다. 무엇을 갈망하는 걸까. 눈부신 유럽스타일의 럭셔리한 공간에서 예를 갖춘 대접을 받고 있음에도 황홀함보다는 왠지 답답하고 먹먹하다.

살기 편리한 아파트, 기록에 의하면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일부로서 서울에서 건립되었다. 산업발전으로 도시팽창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아파트는 고층화가 필요했고, 도시의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면 아파트의 건축이 매우 긴요했다. 때문에 아파트는 현대사회가 불가피하게 만들어 내는 도시의 주거형태로 당연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주거다. 그럼에도 환상적인 뷰(view)로 만족도가 높은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관람하는 내내 체한 듯 답답하고 후련치가 않은 건 왜일까. 어쩜 마당에 부서지는 아침햇살, 쏟아지는 햇빛과 집안에서 함께 뒹굴다 해가 넘어가면서 마당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를 원하는 건 아닐까. 햇빛 각도에 따라 슬그머니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면서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까지 올라오는 그림자. 그러다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주인처럼 방안까지 점령하는 그림자, 내심 그런 집을 원하고 있었나 보다. 이리 체한 듯 답답하고 갑갑한 걸 보니. 어느 건축학자는 `엄마의 자궁 같은 집'을 짓겠다고 했다. 원초적인 평안함에 머물고 싶은 이유라 했다. 이는 밥 냄새, 사람냄새가 나고 따스한 볕이 온기를 감싸는 아늑한 곳, 그곳이 집이기 때문일 게다.

여전히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어수선하게 북적인다. 무리 속에 어긋난 상념은 저 멀리 이탈하여 과거 속에 머무는 나.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만들고 굴곡진 대들보의 자연의 미를 간직한 초가집에 머무는 나다. 좁아도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집이 그리운 건 나만 그런 걸까.

점점 열기가 더해가는 모델하우스, 대형 창문으로 불타는 야경이 반사되면서 화려해진 실내 공간. 속물근성이면 어쩌랴 저마다 감출 수 없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나 역시 연신 감탄사를 토해내면서도 시골집이 그립다. 찰나 얼핏 화물차 앞에 전단지를 획 뽑아버렸던 그 사내, 외향보다 진솔한 삶이 엿보였던 그 사내가 얼비춘다. 남들에게 꿀려 보이지 않으려 버거워도 허세로 겉치레하는 이가 적잖이 많은 현실. 진짜 본인이 원하는 게 아니어도 외향주의로 내면보다 외면을 중요시한다. 당연하지 싶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뭣시 중헌디'난 중얼거렸다. 어느 영화의 명대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