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1.12.1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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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라는 칸트의 말을 새기며 주위를 둘러본다. 다양한 주체로 살아가면서 어떤 대상과 부딪칠 때 “나 아닌 너”를 인정하기 위해 새기는 말이다. 우리는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없다'라고 하면서도 결국 내 삶은 내 의지에 따른 행동의 결정체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쌍방의 합일점이 있어야 한다. 대상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해석은 오류를 낳는다고 했는데, 각자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연말이면 행사나 모임이 많다. `조금 나아지겠지'하고 기대했던 희망도 코로나로 인해 작아졌다. 코로나로 인해 회의와 워크숍이 여러 번 취소되었다가 겨우 한 달 전에 규제가 풀리면서 2년 만에 간신히 제주도로 워크숍을 떠났다. 모처럼 떠나는 길이라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여행이든, 워크숍이든, 견학이든, 방문이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집 떠나면 다들 좋아한다. 단체의 목적에 맞게 온종일 역량 강화 교육과 사례 발표가 있었다. 강사 중 한 분이 단체가 잘 운영되자면 회의보다는 회식을, 여행을 많이 다니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순간 돌아가자마자 총회를 해야 하는 내가 속해 있는 마을 주민자치위원회가 걱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4기 주민자치위원회 임기가 끝나면서 새로운 위원 선정과정과 결과에 대해 어떤 위원이 불만을 토로한다. 나 또한 10여 년간 봉사 활동과 2년간 주민자치위원장을 하면서 면접은 처음 봤다. 주민자치위원 선정에 대해서는 동장님의 권한이라 이렇다저렇다 말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마을 일은 마을 사람들이 잘 알고, 마을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잘 운영되자면 위원들의 구성도 중요하다.

마을마다 특색이 있다. 특히 내가 사는 산남동은 어떤 면에서 대한민국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잠재되었던 부분이지만, 최근 들어 어떤 사람이 들어오면서 의견 충돌이 빈번했다. 위원장을 하면서 한두 위원으로 인해 여러 위원이 불만의 소리를 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위원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능력을 의심했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가 보니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결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동네 사연은 서서히 글로 풀어가려고 한다.

위원 선정은 이렇게 끝났지만, 총회를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좋은지가 고민이다. 연말이라 마음 같아서는 쌓인 것을 풀어놓을 정도로 행사를 하고 싶은데 여건이 따라 주지 않으니 애만 탄다. 고민하다가 별다른 안건도 없고 해서 동장님과 상의한 결과 온라인으로 간단히 회의하고 분과별로 식사하기로 정했다.

한 위원으로부터 태클이 들어왔다.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대면으로 전환한 이유가 무엇이며 주민자치위원회는 동장님의 어용 단체가 아니니 공문 내용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나 또한 한자리에 모여 총회를 하고 싶었으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정이 그러하니 양해해 달라고 답변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이 교체했다. 어느 역량교육에서 강사분이 진상 총량의 법칙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세 명만 모여도 진상 한 명이 있다고 한다. 그 진상이 떠나고 나면 더 센 진상이 나타나니 그 모든 것을 품으며 가는 것이 단체장의 역할이라고. 그 진상도 주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도 아는 까닭에 생각 바꾸기를 해본다.

훗날 이야깃거리가 되리라 믿고 마을 사람들과 즐겁게 관계 맺기를 한다. 뜻하지 않은 공격을 받으면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싶다가도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조각 지식과 해석의 오류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주장이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그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며 명쾌하게 해석해 줄 이론은 없을까? 해석되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더라도 내 행위가 타인에게 준칙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존경과 순응을 끌어내는 것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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