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12.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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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2016년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리는 알파고 마스터, 알파고 제로, 알파 제로로 진화해 바둑에 관한 한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알파고 제로는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리와의 대국에서 100연승을 거두기까지 7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며, 알파 제로는 알파고 제로와의 대국에서 자율학습을 통하여 승리하는 데 30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알파고 제로부터는 인간의 기보 없이 규칙 습득만으로 자체 학습을 통해 바둑을 둔다. 곧 스스로 연구하여 최적의 수를 둔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기보를 연구하여 바둑을 뒀다면 최근에는 인간이 인공지능의 수에 얼마나 가까이 가느냐가 인간의 순위를 결정한다고 한다.

바둑은 이제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을 추월해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바둑계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묻는다. 바둑은 너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할 수 있고 내가 더 우위에 있다. 이제 너의 고유 영역은 뭐지? 증권 분석 AI, 판례분석 AI, 질병진단 AI, 사회 서비스 AI 등이 등장하여 해당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내고 있다. 아직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 정도로 위협적이진 않지만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에 따르면 이들 영역에서도 인간과 인공 지능 사이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변호사, 인공지능 의사, 인공지능 펀드 매니저, 인공지능 비서 등이 본격적인 역할을 할 미래에 인간은 무엇을 통해서 인간만의 고유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AI가 인간에게 묻는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나도 생각할 수 있어. 지능이라는 면에서는 인간인 너보다는 내가 훨씬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 창의적인 노동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학습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건 내 전문이야. 그것도 너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이 시대에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네가 나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가 뭐야? 한 마디로 너의 정체가 뭐야?

인간이 반론을 제기한다. 너는 프로그램화된 존재야. 입력된 사유, 행동을 할 뿐이지만 나는 프로그램화되지 않은 행위를 할 수 있지. 인간들 사이의 정리(情理), 사랑, 우정, 희생 등은 너희가 해내지 못하는 결과를 산출할 수 있지. 결과가 나오지 않는 행위, 심지어는 손해 보는 일도 하거든. 예를 들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무조건적인 희생 같은 거지.

AI가 말한다. 다른 존재를 위해 희생, 봉사하는 삶도 일단은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일이고, 다른 동물들도 새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하지. 예를 들어 자기의 새끼가 있는 둥지를 매가 노리고 있다면 까치는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매와 사생결단으로 싸우거든. 자식을 위한 사람의 사랑이나 희생도 동물처럼 특정 방식으로 프로그램돼서 발현되는 정서이기 때문에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보면 곤란하지.

목숨을 부지하는 일은 합목적성을 벗어날 수 없거든. 곧 프로그램화된 행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거지. 마찬가지로 종의 보존을 위한 행위도 이미 프로그램화된 행태지. 오리나 꿩, 사자, 개, 독수리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2세 산출과 보호에 목숨을 걸거든. 이상하지 않아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지? 그게 바로 인간도 동물처럼 프로그램화되었기 때문이지. 결국 인간들도 나(AI)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화된 존재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지. 유전자나 게놈이 바로 그런 프로그램인거지.

인공 지능의 시대, 우리는 우리를 다시 돌아보며 물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기계가 우리 대신에 생각하고 행동해준다면 머리 쓰는 일과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우리는 무얼 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뭐하고 살아야 하냐구? 입력된 프로그램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을 해야지.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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