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고장 청주 의병의 성격
정의로운 고장 청주 의병의 성격
  •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 승인 2021.12.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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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빼앗겼던 청주성을 의병장 조헌과 박춘무 등이 탈환 한 전투가 청주성 전투다.

청주성 전투에 관해서 역사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서남지역에 1,600명의 의병을 모은 조헌은, 1592년(선조 25) 7월 하순 청주성 교외에서 승장 영규가 이끄는 약 1,000명의 승병과 방어사 이옥의 500관군을 거느리고, 8월 1일 하치스카이에마사가 지휘하는 왜군이 점령하고 있던 청주성을 공격하였다. 이날 종일 계속된 치열한 공방전 끝에 왜군은 밤사이에 성을 버리고 퇴각했다.'라고.

우리 민족은 특별한 유전인자(DNA)를 갖고 있다. 이웃과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나와 함께 힘을 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을 `의병정신'이라 부른다.

의병의 역사는 멀리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의병 정신이 일제강점기 의병 투쟁과 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고, 국난의 시기마다 요원 불길처럼 일어나 온 국민이 함께 해결하는 저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IMF위기 때는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국가부도 사태를 막아낸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사를 만든 `히스토리메이커'들이 우리 국민이다.

충절의 고장 청주 의병정신의 뿌리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주 의병의 성격을 연구한 역사가는 청주 의병의 특징을 기술하고 있다.

첫째, 대표적인 의병장인 박춘무, 조강, 박우현 등이 청주지역에서 대체로 7월쯤에 의병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들은 조헌이 6월 초 옥천에서 소수의 향병을 모병한 것으로 제외하고, 7월쯤에 창의하여 청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왜병을 격퇴하였다.

둘째, 청주의 의병들은 개별 전투보다는 다른 지역의 의병부대와 연합작전을 전개한 점이다. 특히 청주지역의 의병은 전라도 김천일 의병과 연합하여 의병의 고립을 막고 보급로를 확보하는데 기여하였다. 즉 김천일-조헌, 그리고 박춘무-고경명으로 이어지는 작전을 구상하여, 금산과 금강 이북을 방어하고 왜군을 차단하였다. 그리하여 청주성 전투 이후 조헌은 금산으로, 박춘무는 진천으로 진군하여 각각 전투를 펼쳤다. 그리고 조강은 송령 전투의 승리로 왜군이 호남을 통해 북상하려는 작전을 차단하는 전과를 올렸다.

셋째, 학연에 따른 의병이었다는 점이다. 의병의 모집에서부터 학맥에 따랐으며 의병 상호 간에 연대하고 연합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박춘무, 송제민, 조헌 등이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문인이었다. 역시 교육과 학문의 고장 청주다운 특징이 아닐 수 없다.

청주 우암산 순환도로 시작되는 지점에 삼일 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충북 출신 6분의 동상이 우뚝 서 청주를 내려다보고 있다. 청주의 멋진 야경도 보면서 특별한 유전자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삼일 공원에 가서 민족대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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