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전한 나라, 존경받는 경찰
가장 안전한 나라, 존경받는 경찰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1.12.06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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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2012년 4월 세간을 놀라게 했던 경기 수원에서의 `오원춘 토막 살인사건' 때문에 옷을 벗은 경찰 수장이 있다. 조현오 제16대 경찰청장이다. 임기를 4개월 여 앞 둔 시점이었는데 그해 4월 9일, 사건 발생 후 8일만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표를 냈다. 오원춘 사건은 수원에서 발생했다. 부실했던 경찰의 초동 대응으로 꽃다운 28세의 여성이 성폭행 후 잔인하게 살해를 당했다.

경찰은 무능하고 한심했다. 당일 밤 오원춘의 집에 끌려간 피해 여성은 오원춘이 한눈을 판 사이 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112에 다급하게 신고를 했다. “지금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지동초등학교에서 못골놀이터 가기 전의 집이다.” 그러나 112신고센터의 경찰은 `핸드폰으로 위치 조회를 해보겠다', `누가 그러느냐'`아는 사람이냐', `방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갔느냐', `주소를 다시 말해달라' 등 한가한 질문만 하며 7분 36초 동안 신고자와 통화를 하며 시간만 허비했다. 현장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붙잡고 엉뚱한 대화만 했다.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당시 112지령실에서는 무려 20여명의 경찰이 7분36초 동안 피해 여성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를 함께 듣고 있었다. 전화가 끊긴 후의 후속 조치는 더 황당했다. 112신고센터에서 10여 차례 출동 지령을 내리면서 정작 사건 발생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집안'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아 경찰들은 엉뚱한 곳만 찾아 다녔다. 결국 다음날 여성은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후 경찰청장이 옷을 벗고 10여명의 경찰이 중징계를 받았다.

송민헌 인천경찰청이 지난 1일 전격 사퇴했다. 지난달 인천시 남동구 논현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층간 소음 살인 미수 사건이 일어난 지 보름만이다. 당시 출동한 경찰들은 피해자 목에 칼이 찔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현장에서 도망친 것으로 확인돼 국민의 공분을 샀다. 피해자는 현재 뇌사 상태다.

송 청장은 사퇴 입장문을 통해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총괄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인천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민 안전을 지키는 경찰의 책무가 얼마나 무겁고 엄중한 지 깊이 새겨달라. 환골탈태의 자세와 특단의 각오로 위급 상황에 처한 시민의 보호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꼬리자르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인천 경찰만의 문제이겠는가. 경찰청이 사건 발생 후 현장 대응력 강화 태스크포스팀(TF)을 가동하기로 했다. 경찰 교육 체계 개편, 장비 실용성 및 사용 훈련 강화, 매뉴얼 개선 등의 대책을 세운다는 방침이다.

9년 전 오원춘 사건 때처럼 항상 `사고' 때 마다 나오는 처방이다. 국민은 쉬 이해할 수 없다. 창설 71년이 지난 대한민국 경찰이 또다시 매뉴얼 타령을 하고 있다니.

경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메인화면에 `가장 안전한 나라, 존경과 사랑받는 경찰' 이란 슬로건을 볼 수 있다. 1년 4개월 전 김창룡 청장이 취임사에서 `천명(闡明)한' 말이다. 하지만 그 다짐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최근의 인천 층간 소음 사건을 비롯, 서울 중구의 스토킹 살인 사건, 충남 서산의 손도끼 협박 자살 사건 등 모두 경찰의 초동 대응 미숙으로 국민의 가슴에 멍만 들게 했다.

수장은 용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책임은 져야 한다. 이번의, 아니 오래전 부터의 치명적인 `과실(過失)'들이 다시는 번복되지 않도록 14만 경찰 조직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 시작이 환골탈태의 각오와 추상같은 기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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