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축복
12월의 축복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11.30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닐 텐데 이상하게도 12월이 되면 자성을 하게 된다. 허투루 보낸 일들은 없는지, 소홀하게 대했던 사람들은 없는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기억을 거슬러 되짚어 본들 편린들 속에 감추어진 잘못들을 다 어찌 잡아낼 수 있을까.

올 한 해를 되작여 보니 정말 열심히 살았던 해였다. 내 나이쯤 되면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지인에게서 주워들은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그 말을 어기고 말았다. 나는 올해 새롭게 시작한 강의가 두 개나 되었다. 기존에 있던 강의를 합치면 다섯 곳이다. 다행인 것은 그중 두 군데는 기간이 길지 않은 덕분에 다른 강의들도 그리 버겁지는 않았다.

강의 하나하나가 나에겐 소중하다. 그중 올해 시작한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서, 글쓰기 여행'강의는 나로서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었다. 강의 제의와 수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 후가 문제였다. 글을 쓴 지는 20년이 넘었고, 등단을 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필집을 세 권을 냈고, 여타 문학 공모전을 비롯한 문학상도 여럿 받았다. 20년이 조금 못 미치는 기간 학생들의 논술지도도 했다. 또한, 한국교통대에서 `자기소개서 글쓰기'수업을 한 지도 3년이 넘었다. 하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지도와 대학교 강의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와는 분명 달라야 했다. 물론 논술과 자기소개서도 글쓰기의 한 갈래이다. 하지만 논술은 감성보다는 이성을 앞세우는 글쓰기이고 자기소개서는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치로 보여 줘야 하는 글쓰기이다. 반면 수필과 시는 내면 깊이 숨겨져 있는 감성을 끌어올려 줘야 하는 글쓰기이다.

그래도 강의까지는 두어 달의 말미가 있어 다행이었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구입하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회차마다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틀을 짜고 피피티도 만들었다. 드디어 수업 날, 수강생들의 마음을 끌어들이기 위해 실험을 하기로 했다. 모두 눈을 감게 했다. 자신이 작은 벌레가 되어 세상을 보라고 했다. 그렇게 한참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눈을 감은 채 본 것을 말해 보라고 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쑥스러워 말을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강의가 거듭될수록 수강생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풀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도 눈을 감으니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고, 때로는 눈물을 쏟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쏟아 낸 말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니 모두가 노트 한쪽은 거뜬하게 채웠다.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웠다. 일주일에 두 번, 매번 한 편씩 글을 쓰고 발표를 했다. 스스로 대견해하는 수강생들을 보며 나는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요즘은 카페를 가보면 서로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일지라도 그렇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마음껏 해도 경청을 해준다. 그리고 눈을 감고 하는 이야기는 결국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받는 위로가 아닌 자신에게 받는 위로가 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각자 주어진 삶의 모습들이 다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아픈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그렇게 아픈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살아왔으니 오죽이나 쓸 이야기가 많았을까. 놀라울 따름이었다. 얼마 후면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온다. 물론 글솜씨가 매끈하지는 못하다. 울퉁불퉁 못생겼어도 맛있는 개똥참외처럼 그 맛은 달고 아삭한 맛있는 글이라 자부한다. 12월, 졸졸졸 도랑물이 겨울의 밑으로 흐르는 시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