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는 그녀가 있다
공원에는 그녀가 있다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1.11.3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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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며칠째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 즐겨 앉던 자귀나무와 소나무 아래에도 흔적이 없다. 혹시 앓고 있다는 몹쓸 병이 심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공원 앞에 가게를 열면서부터였다. 알고 지냈다고 해서 서로 따뜻하게 눈길 한 번 마주한 적 없고, 정답게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는 그런 사이다. 그러면서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궁금해지고 보고 싶기도 한 이상한 관계다.

처음 그녀가 공원을 한가한 듯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때였다. 걸음걸이나 옷 입은 모양새가 영락없이 남자의 모습이었다. 체격도 건장한 젊은 사내가 매일 공원을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걸 보며 참으로 한심한 인간도 다 있구나 생각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 내 눈에는 금쪽같은 시간을 허송세월하는 그가 곱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뽀얗게 분을 바르고 눈 화장과 립스틱까지 곱게 바른 그와 마주쳤다. 천생 여자였다.

그날부터였다. 나이도, 이름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그녀가 공원에 나타날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여자이면서 늘 남자차림 새로 거리를 돌아다닐 때에는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터였다. 유심히 살펴보니 행동이 요상했다. 수시로 자귀나무나 소나무 아래에서 가부좌하고 앉아 두 손을 합장하고 기도를 하는 듯했다. 그 모습은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어느 날에는 뭔가에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공원에 동심원을 그리며 맴을 돌았다. 간혹 옆에 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양이면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하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가끔은 커다란 콜라병을 들고 나타나 줄담배를 피며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다가 사라졌다.

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속 시원하게 물어볼 요량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를 불러 세웠다. 눈빛이 형형하다. 굶주림에 먹이를 찾아 헤매는 들짐승의 눈빛이 그러할까. 강렬한 그 무엇이 나를 휘감고 놓아줄 것 같지 않아 섬뜩했다. 무섬증에 한마디 말도 건네 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가게로 돌아오고 말았다.

소문에는 무병을 앓고 있다고도, 애를 낳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나 그 충격에 정신 줄을 놓쳐 버렸다고도 했다. 어찌 되었든 상처 입은 영혼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그녀의 행동들이 가늠되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울까.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한동안 그녀가 측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섬뜩한 눈빛이 떠올라 공원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그녀가 가게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가게를 빤히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오체투지를 하며 절을 하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그녀의 돌출행동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동안에도 절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지금도 나는 우리 가게 쪽을 향해 절을 한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어쩌면 자신을 몰래 훔쳐보며 온갖 상상을 하는 나란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나 무심한 듯 공원을 돌아다니지만, 그녀는 자기와는 분명 다르지만 나 역시도 가슴앓이를 하며 흔들리며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아버렸나 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을 살면서 누구인들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만 살아갈 수 있을까. 나 역시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 힘겨웠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공원을 바라보았다. 햇볕이 제법 따스하다. 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가 명주바람에 실려 하늘로 울려 퍼진다. 그녀가 벤치에 앉아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마음을 모아 두 손을 합장하고 그녀를 향해 기도했다. 더는 흔들리지도 말고 우뚝 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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