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과 공직자의 청렴
초심과 공직자의 청렴
  • 서완석 충북도 환경정책과장
  • 승인 2021.11.3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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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서완석 충북도 환경정책과장
서완석 충북도 환경정책과장

 

엘바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언론이 보여준 행태는 언론과 권력의 함수관계를 잘 드러내는 사례로 꼽힌다. 권토중래를 꿈꾸며 권력의 심장부 파리로 향하는 나폴레옹의 귀환에 대해 당시 한 일간지의 보도는 다음과 같이 드라마틱하게 변모하였다.

살인마, 소굴에서 탈출 → 코르시카의 아귀, 쥐앙 만 상륙 → 괴수, 카프에 도착 → 괴물, 그르노블에 야영 → 폭군, 리옹 통과 → 약탈자, 수도 60마일 지점에 출현 →보나파르트, 급속히 전진! 파리 입성은 절대 불가 → 황제, 퐁텐블로에 도착하시다 → 황제 폐하, 튈르리 궁전에 드시다.

현실 권력 앞에서 언론이 일관된 논조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당대의 기자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정립돼 있었다면, 그 사명감이 그들의 흔들림 없는 초심이었다면 이러한 촌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권력에 대한 빈틈없는 감시와 견제. 자기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언론 앞에서 `전쟁광' 나폴레옹의 모습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두문불출이란 단어는 여말선초의 격변기였던 우리 역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역성혁명에 성공하여 새로운 왕조를 일으킨 이성계의 부름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던 고려조의 충신 72명은 현재 경기도 개풍군의 두문동 골짜기에서 은거하였다고 한다.

새 권력자는 자신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들을 불살라 죽였고, 희생된 두문동의 유신들은 충절의 상징으로 이 나라의 역사 가운데 전승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버리면서까지 패망한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할 수 있었을까? 이들이 끝까지 지조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나라의 녹을 먹는 순간부터 처음 품었던 군주에 대한 충성심, 곧 초심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초심은 자신들 존재의 이유이자 가치였기 때문에 목숨보다 더 소중했던 것이다. 고려시대의 문제점과 조선왕조 창업의 정당성 등은 논외로 하고, 이들이 보여준 일관된 행보는 이 시대의 공직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

흔히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어떤 초심을 품느냐'가 더 철저히 고민돼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국가의 곳간을 지키고 살림을 책임지는 공복들이 처음부터 자신들에게 주어진 곳간 열쇠를 일확천금의 도구로 삼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명감보다는 일신의 영달을 우선순위로 삼는 일꾼들로 가득하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필자가 공직생활을 시작하던 때와 다르게 사회 전반적으로 공직에 대한 선호도가 많이 상승하였음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점이 많은 이들이 공직자를 꿈꾸는 이유가 단순히 직업적 안정성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후배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청렴과 봉사정신, 희생적 태도를 그대들의 초심으로 삼기를. 개인의 야욕으로 점철된 나폴레옹의 길이 아니라 두문동 충신들의 길을 걸어가길. 앞선 선배들보다 더 강직한 자세로 나라를 사랑하는 공직자가 되길 당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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