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의 여운
까치밥의 여운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1.11.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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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빨갛게 익은 홍시가 파란 하늘에 걸렸다. 서리 맞은 잎들은 우수수 떨어지고 앙상한 나무의 우듬지에 대여섯 개의 감이 달려있다. 네 살 손녀에게 감나무를 가리키며 감을 보여주자, 손녀는 감이 왜 저렇게 조금 달렸느냐고 물어왔다. 그건 감나무 주인이 감을 따면서 새들에게 먹을 것을 남겨두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는 까치밥의 의미를 알기는 할까. 우린 농촌에서 자랐으니 산, 나무, 농작물들을 자연스레 접하며 감나무 밑이 놀이터였다. 요즘 아이들은 지방 소도시에 살아도 실제 과일나무를 보기보다 책이나 영상매체로 먼저 익히지 않던가. 책에서 보았던 것들을 실제로 만나면 호기심이 가득하다. 아이는 처음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궁금해하더니 차츰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유년의 집 뒤뜰에는 큰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늦은 봄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연초록 잎들 사이를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보면, 소박한 감꽃이 소리 소문도 없이 팝콘처럼 피어 우릴 내려다봤다.

감꽃이 떨어지고 큰 잎사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감은 볼 때마다 조금씩 볼 살을 찌우며 커갔다. 추석 무렵이면 어머니는 누르스름해진 감을 항아리에 따 담고 따뜻한 소금물을 부어 하루 정도 우려서 운동회나 가을 소풍 때 챙겨 주셨다.

굴뚝 모퉁이에 있는 감나무는 서리가 내린 후 늦게 감이 익어갔다. 아버지가 가을 추수 틈틈이 감을 따시다 남겨놓은 제법 많은 홍시가 하얀 눈을 맞고 겨우내 까치들을 불러들이던 풍경이 아련하다.

가을은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농부들은 농작물들을 거둬들이고 주부들은 겨울 동안 먹을 김장하느라 분주하다. 일 년에 한 번 수확하는 과수원에서는 사과, 감, 배 그런 과일들도 모두 따서 저장한다. 가정에서도 이맘때면 과일을 평소보다 넉넉하게 구매를 하여 겨울 동안 가족들이 두고 먹는다.

갈무리라면 들짐승도 마찬가지다. 가을 등산길에 만나는 다람쥐, 청솔모도 겨울 양식을 준비하느라 도토리, 밤을 물어 나르기에 분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등산을 하다 보면 길이 아닌 풀숲이나 나무 밑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채취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봄에는 산나물을, 초여름엔 산딸기를 따고 가을엔 밤을 줍고 도토리를 주어다 묵을 쑤어먹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고라니나 산돼지는 그들의 터전인 산을 내려와 다 지어놓은 농작물을 하룻밤 사이 망가뜨려 놓기도 한다. 농부들은 가뭄이나 홍수, 태풍 등 자연여건도 어렵지만 산짐승들 피해 때문에도 노심초사한다. 옥수수나 고구마, 과일 등 수확을 앞둔 작물들을 잠깐 사이 전부 망쳐놓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새들도 수수밭이나 과일나무에 무리지어 날아든다. 모르긴 해도 사람으로 치자면 일가친척 사돈네 팔촌까지 모두 모여 무리지어 다니는 듯하다. 때문에 농부들은 이런 피해를 막으려고 울타리를 치기도 하고 가만히 서 있는 허수아비보다 좀 더 발달한 독수리 모양 연을 띄워 날짐승들을 쫓아내기도 한다.

쌀쌀한 날씨에 하늘이 쾌청하다. 머지않아 눈도 내리고 매서운 추위를 몰고 올 겨울의 문턱에 와있다. 이맘때면 농부들도 먹이를 빼앗고 뺏기지 않으려는 동물들과의 실랑이도 다 잊은 듯하다. 앙상한 가지에 몇 개 안 되는 홍시는 추운 겨울날 날짐승들의 요깃거리이자 사람들이 그들에게 베푸는 애정 어린 마음이 빨갛게 익어가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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