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띄운 국화
술에 띄운 국화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11.2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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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가을이 깊어 가면서 대지를 적시던 아침 이슬은 차가운 서리로 탈바꿈한다. 서리를 맞은 초목들은 하나 둘 시들어 떨어진 모습으로 겨울나기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그런데 이때 서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기를 유지하며 향기를 발하는 꽃이 있으니, 국화가 그것이다.

예로부터 올곧은 선비나 은자들로부터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꽃으로 칭송될 만큼 강인한 기품을 지닌 꽃이 국화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이(李珥)도 이 꽃을 무척이나 애호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술에 띄운 국화(泛菊)

爲愛霜中菊(위애상중국) 서리 속의 국화를 아끼기 때문에
金英摘滿觴(금영적만상) 금빛 꽃잎을 따서 잔에 가득 채웠네
淸香添酒味(청향첨주미) 맑은 향기가 술 맛을 더해주고
秀色潤詩腸(수색윤시장) 빼어난 자태는 시심을 일깨우네
元亮尋常採(원량심상채) 도연명이 늘 꺾어 들고
靈均造次嘗(영균조차상) 굴원은 언제나 맛보았었지
何如情話處(하여정화처) 어찌하여 정담을 나누는 곳이
詩酒兩逢場(시주양봉장) 시와 술 짝 되어 만나는 곳만 하리오?

시인은 어떤 계기로 인해 국화를 곁에 두고 애호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리학자였던 시인으로서는 자연스런 일로 보인다. 가을이면 국화를 옆에 두고 관상하곤 했는데, 한 번은 시주(詩酒)를 나누는 자리에서, 술잔에 국화 꽃잎을 가득 채워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시인으로 하여금 특별한 감회를 맛보게 하였다. 맑은 향이 술 맛을 더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빼어난 빛깔의 국화 자태는 굳어 있던 시심을 촉촉하게 적셔 주기까지 하였다.

과거 중국의 대시인이었던 도연명과 굴원이 국화를 아꼈던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지 정담을 나누는 것보다는 술과 시를 주고받는 자리에 국화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시인은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때에 쓸쓸함을 달래 주고 삭막함을 막아 주는 존재가 국화이다. 서리를 이겨내고 들판에 꿋꿋이 피어, 은은한 향기를 발하는 국화야말로 많은 사람이 본받고 싶어하는 삶의 표상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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