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독 들이다
눈독 들이다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1.11.2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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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김장만 해 넣으면 겨울준비 끝이다. 그런데 이장님이 무밭 작업을 안 하신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즈음 이장님 무밭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학교 급식용으로 나가기 때문에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신다. 미끈한 건 납품하고 조금 미달하는 것들은 그냥 밭에 버린다. 밭에 작업을 마치고 나면 동네 사람들이 밭으로 간다. 봄에는 감자도 그랬다. 크기만 조금 작을 뿐 유기농 감자다. 이장님 밭에서 키운 채소를 먹어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남의 것에 눈독을 들인다는 것은 욕심을 내는 일이다.

눈독은 물건이나 사람에게 욕심을 내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궁리하며 쳐다보는 시선이란다.

나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길가에 꽃이나 돌멩이에 눈독을 들이는 일이 많아졌다.

매일매일 지나다니는 길가에 예쁜 돌이 있었다. 고양이 기름 종지 노리듯 몇 날 며칠 눈독만 들이다가 작정하고 가져 와야지 하고 갔더니 그것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분명 어제까지도 있었는데 말이다. 내 것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내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그 서운함과 허망함으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나 말고도 그 돌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나 보다. 예쁘고 좋은 것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흔전만전 넘쳐 나는 것도 내게 없으면 귀한 것이다.

막내 고모와 나는 두 살 터울이다. 나이 차가 많은 동생들보다는 고모와 더 가깝게 지냈다. 한방을 쓰면서 학교도 같이 다녔다. 고모가 결혼날짜를 잡아놓고 혼수 준비로 바쁜 날을 보낼 때였다. 벌써 40년 전일이다.

성안 길에서 그가 고모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고모가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릴 거라니까 자기가 사진을 찍어주겠단다. 그때는 남자가 여자친구결혼식에 간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나와 고모친구들은 결혼식 전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물론 그도 함께 갔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게임도 하고 기차에서 간식도 사 먹으면서 재미있게 다녀왔다. 함께 갔던 고모친구들이 그에게 관심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나에게 눈독을 들인 것이다. 결혼식에 다녀온 후 사진을 빌미로 그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눈독 들이는 것이 많다. 좋은 것을 보고도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거나 어린아이의 일게다. 속심은 감추고 겉으론 보고도 못 본 척 눈독만 들이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라고 그걸 다 표현하고 살까. 눈독은 욕심일 수도 꿈이 될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사람에게 혹은 물건, 권력, 돈에 눈독을 들이지 않은 날이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아주 사소한 것부터 터무니없는 꿈을 꾸거나 눈독을 들이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 싶다. 눈독 들이는 것을 말로 다 표현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민생은 뒷전이고 자리에만 눈독을 들이다가 국민들에게 눈총을 받는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인다는 말일 것이다. 눈독을 들여 운명적인 인연으로 평생을 함께 갈 수도 있고 물건처럼 다만 욕심을 냈을 뿐 취하고 나면 관심이 없어지는 것도 있다. 꿈을 꾼다고 다 이루어지는 게 아니듯 눈독 들인다고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나는 오늘도 이장님 무밭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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